[사설] 돼지골 빈곤은 춘천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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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돼지골 빈곤은 춘천의 수치다

    • 입력 2024.03.20 00:01
    • 기자명 MS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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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게 내려앉은 돼지골의 집과 우뚝 솟은 아파트가 대비된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낮게 내려앉은 돼지골의 집과 우뚝 솟은 아파트가 대비된다. (사진=김용진 인턴기자)

     춘천 후평동 일대 높이 솟은 아파트촌 사이에는 섬처럼 자리 잡은 판자촌이 있다. 춘천 사는 보통 사람들은 물론 택시 운전을 하는 기사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최근 갑자기 생겨난 동네는 아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판잣집 짓고 돼지 키우며 살아 ‘돼지골’로 불려왔다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감안하면 족히 70여년은 된 곳이다. 그런데도 길 안내 해주는 내비게이션에도 좀처럼 검색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 관심권에서 철저히 소외된 마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돼지골에 가면 동시대 보기 드문 광경이 곳곳에 널려 있다고 현장을 찾은 본지 취재진은 전한다.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울어진 담벼락과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좁은 동네 어귀에는 요즘 시대 구경하기 어려운 흰색 고무신과 꽃 달린 단화가 나뒹군다고 한다. 문틈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부엌 마루에는 이젠 국내에선 생산이 아예 중단되어 중국산만 있다는 팔각형 유엔 성냥이 널브러져 있다. 모두 노인 빈곤의 증표들이다.

     현재 돼지골에는 돼지는 없고 젊은이도 없고, 70~80대 노인 20명만 살고 있다. 세대수로는 15세대이니, 대부분 독거노인이다. 이들의 삶은 궁핍하다 못해 비참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60년 넘게 살았다는 올해 아흔 된 노인은 나라에서 주는 기초노령연금 33만원이 월수입 전부라고 한다. 이 돈으로 병원비와 약값, 전기요금 등을 내고 나면 끼니를 잇는 것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정부가 사람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산정한 2024년 최저생계비가 71만3102원임을 감안하면 최소생활이 안 된다는 얘기다. 대부분 돼지골 노인들은 겨울이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고스란히 몸으로 때우고, 여름이면 찌는 듯한 더위와 냄새를 부채 하나로 버티며 살아간다. 사는 게 오죽 어려우면 기자에게 “내 삶이 딱 끊어졌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돼지골 노인의 빈곤 문제를 제기하면 행정당국은 대개 정해진 답을 되풀이한다. “특정 지역에 대한 복지는 있을 수 없고, 기준을 충족하는 분들에게 지원금이나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복지가 당사자 신청주의라는 점을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한 발상이다. 신청주의는 말 그대로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고무신과 성냥갑 시대에 사는 노인들이 모든 게 인터넷 디지털로 처리되는 복지정책 중에서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해당하는지 어떻게 알 것이며, 설령 안다고 한들 제대로 신청할 수 있겠는가. 문자 그대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지 않으면 돼지골 노인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는 사실상 방치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돼지골 빈곤율이 한몫한다는 것은 수부 도시 춘천의 수치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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