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강 포니교와 지주기초 : 소양강과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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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양강 포니교와 지주기초 : 소양강과 춘천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소양강 포니교와 케이블카(삭도)지주기초 : 소양강과 춘천

    • 입력 2024.03.14 00:00
    • 수정 2024.03.15 00:14
    • 기자명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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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춘천에 있는 학교 교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지명이 소양강과 봉의산이다. 그만큼 이 두 지명은 오랜 시간 춘천인 삶의 중심에 있었고 춘천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대표상징으로 자리하였다. 소양강에는 소양1교(1933년), 소양2교(1967년), 우두교(3교, 1999년), 맥국교(5교, 2001년), 워나리교(6교, 2005년), 윗샘밭교(7교, 2019년), 세월교(일명 콧구멍 다리) 등 모두 7개의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소양강에는 소양1교(본명 소양교)를 제외하면 모든 다리가 광복 이후에 지어졌다. 그 가운데 소양2교의 전신인 포니교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미 육군 62공병대에 의해 25일 만에 나무다리로 건설되었다. 포니교는 1950년 11월 청천강 전투에서 숨진 미 육군 19공병단 포니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포니 브리지(FORNEY BRIDGE)’로 명명되며 붙여졌다.

    포니브리지(1954년). (사진=강원도청홈페이지)
    포니브리지(1954년). (사진=강원도청홈페이지)

    춘천의 강남과 강북을 이어주며 시민에게 무한 사랑을 받았던 포니교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1954년 9월 들이닥친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육군 건설공병대의 5개월간의 복구 작업으로 1955년 4월 두 번째 준공식을 치렀다. 1956년 9월 태풍 엠마가 한반도를 강타하자 맥없이 유실되었고, 1958년 4월에 육군 야전공병단이 복구 공사를 하여 8월에 세 번째 준공식을 치렀다. 
     

    소양2교 준공식(1967년). (사진=국가기록원)
    소양2교 준공식(1967년). (사진=국가기록원)

    이후 나무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아스팔트를 굳히는 타르(속칭 타마구)가 덧입혀졌고 이 때문에 ‘꺼먹다리’로 불렸다. 세월이 흐르며 소양교의 노후화와 포니교가 부식되면서 안전상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늘어나는 물동량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1964년부터 포니교를 대체할 시멘트 다리가 놓이기 시작해 1967년 4월에 2차선의 소양2교가 준공되었다. 이후 전쟁의 비극을 오롯이 담고 있던 포니교는 철거되었고, 다리의 주인이었던 포니 대령의 이름은 시민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1933년 준공된 소양교(현 소양1교) 외에 1940년 현 소양강스카이워크와 같은 선상으로 높이 14미터가 넘는 시멘트 구조물 두 세트(3번 4번 지주 기초)와 높이 약 10미터 시멘트 구조물 한 세트(5번 지주 기초)가 강을 가로지르며 약 250미터, 408미터, 456미터 간격으로 세워졌다. 이 구조물 위로 30미터에 달하는 목조 트러스 구조물이 세워졌다. 소양강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이르면 소양강 쏘가리 상이 얹힌 시멘트 구조물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북면 마산리(현 사농동) 춘천공립농업학교 주변에 설치되었던 소양강삭도와 지주. (사진=춘천농공고등학교(현 강원생명과학고) 100년사 화보)
    신북면 마산리(현 사농동) 춘천공립농업학교 주변에 설치되었던 소양강삭도와 지주. (사진=춘천농공고등학교(현 강원생명과학고) 100년사 화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 시멘트 구조물을 다리를 만들기 위해 세운 교각이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 시멘트 구조물은 수송용 케이블카(삭도)를 떠받치는 지주(支柱:기둥)의 받침대로 쓰이는 기초(基礎)로 ‘지주 기초’가 공식 이름이다. 즉 지주 기초는 강철 와이어에 매달린 케이블카(삭도)를 공중에 부양하는 나무 트러스(기둥)를 지탱하는 구조물이다.

    소양강 삭도는 화천댐 건설에 필요한 시멘트 등의 건설 자재를 나르기 위해 설치되었다. 화천댐은 일본제국이 무기 제조용 철강 생산에 필요한 전기 공급을 위해 건설하였고, 댐 건설을 위해 경춘선으로 실어 온 자재를 화천으로 운반하기 위해 세운 케이블카(삭도)의 트러스 받침 구조물이 현재 남아있는 지주 기초이다.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해 세웠던 구조물이 84년의 세월을 버텨내며 조선 수탈의 상징처럼 현재까지 남아있다고 하겠다.
     

    소양교 교각 사이로 보이는 삭도 지주. (사진=이남수 제공(1942))
    소양교 교각 사이로 보이는 삭도 지주. (사진=이남수 제공(1942))

    아이러니하게도 2006년 춘천시는 관광 명소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몇억의 예산을 써가며 소양강의 천연기념물인 황쏘가리를 은빛 찬란한 모형으로 만들어 3번 지주 기초 위에 얹었다. 2023년에는 신사우동 마장천 생태하천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5번 지주 기초 위에 시민에게 휴식할 공간을 제공한다며 인도교(길이 106미터, 폭 4미터)와 전망 공간을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설치했다.

    일제의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침략 산업 유산을 이용하여 춘천시는 많은 예산을 들여 관광콘텐츠와 시민 휴식 공간을 조성하였다. 이 사업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바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 허준구 필진 소개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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