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2만명 궐기대회 날⋯병원서는 응급환자도 가려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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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들 2만명 궐기대회 날⋯병원서는 응급환자도 가려 받는다

    수술 축소에 암환자 "수술 일주일 앞두고 취소됐다"
    "이제 파국이다"…상급종합병원, 환자 더 줄일 듯
    전공의 복귀 움직임 미미…'전임의' 동요는 아직 없어

    • 입력 2024.03.03 17:32
    • 수정 2024.03.03 17:37
    • 기자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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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되는 환자. (사진=연합뉴스)
    전원되는 환자. (사진=연합뉴스)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좀처럼 돌아오지 않으면서 현장의 어려움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들마저 응급 환자를 가려서 받는 실정이며, 수술 축소로 암환자 수술이 연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일부 전공의들이 하나둘 병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지만, 서울시내 대형병원에서는 아직 "체감하기는 힘들다"는 분위기이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각 병원은 전공의의 업무 공백이 장기화한 데 따라 수술과 진료를 줄이는 비상진료체계를 지속해서 가동하면서 이들의 복귀와 전임의들의 추가 이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은 아직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이 구체화하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로 전했다.

    이들 병원은 이미 수술을 50% 가까이 줄이면서 신규 환자의 입원과 외래 진료를 대폭 축소한 채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교수와 전임의 등을 활용해 최대한 가동한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응급실에서 내과계 중환자실(MICU) 환자를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응급환자마저도 부분적으로만 수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서울성모병원 역시 얼굴을 포함해 단순히 피부가 찢기거나 벌어진 열상 환자의 경우 아예 24시간 응급실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들은 현 상황이 지속하면 수술과 진료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고, 환자들의 대기 시간도 2∼3배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병원들은 간호사 인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7일 전공의 이탈로 인한 진료 공백에 대응하고자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조정하는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즉시 시작했다.

    전국 수련병원장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 등에 따라 업무 범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병원장은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고 간호부서장과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

    서울성모병원은 진료 과목별 부족한 인력을 파악하고, 간호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진료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는 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되고 있는 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가운데 전임의의 이탈 여부에 대해서는 병원마다 전망이 엇갈린다.

    전임의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뒤에도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에 대한 연구와 진료를 이어가는 의사들이다. 교수들과 함께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왔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는 200여명 정도인데, 지난달 말 기준으로 예년과 같은 규모로 등록을 마쳤다"며 "아직 뚜렷하게 감지되는 건 없지만 추가 이탈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전임의 수가 소폭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임의 수는 225명, 이달 전임의 수는 215명이다.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은 내주가 돼봐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들은 전공의처럼 대다수가 빠지진 않겠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병원에서도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대규모 이탈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쌓일 대로 쌓인 업무를 감당하지 못한 채 이미 사직을 결심한 전임의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병원 교수는 "남아있는 임상 강사와 막내 교수들의 피로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외과 주니어 교수 1명이 너무 힘들어서 사직하겠다고 한다더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지금 남아있는 전임의로는 어림도 없다"며 "2주 정도 되니까 중환자 관리에, 당직까지 하면서 고생하는 전임의들이 사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직간접적으로 들린다"고 전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와 전공의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이제 파국이고, 회복 불능 상황이 됐다"며 "각 수련병원은 지금의 인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아예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환자 중심 진료체계를 구축하고, PA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해서 일반 입원환자 진료에 차질 없게 해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은 환자를 더 줄여야 하고, (환자들은) 불안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큰 병원 아닌)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고 봤다.

    이 사태가 종료된 후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예측도 나온다. 의사를 향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정부의 강도 높은 발언 등을 겪은 전공의들이 아예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지금 전공의들은 이득을 얻기 위해 파업하는 게 아니어서 정부가 원점으로 돌려도 상당수가 안 돌아올 수 있다"며 "이미 뇌관을 건드린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의료현장의 혼란이 지속하는 가운데 선배 의사들은 거리로 나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강하게 규탄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대로 인근에서 '의대 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의사의 노력을 무시하고 오히려 탄압하려 든다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공의들의 현장을 떠나고, 선배 의사들이 거리로 나간 사이 환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내몰리고 있다.

    한 갑상선암 환자는 암 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술 일주일을 앞두고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취소를 통보받았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이 없다더라"며 "기약이 없어서 이게 그동안 더 커지거나 퍼질까 봐 걱정되는데 괜찮겠느냐"고 불안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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