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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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의 시대

    [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 입력 2024.02.22 00:00
    • 기자명 최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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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 작가
    최삼경 작가

    입춘, 우수를 지나자 어김없이 남도의 꽃소식이 들린다. 통도사 홍매화, 광양 매화마을 등의 명성이야 익히 알려져 있고, 지리산 화엄사 홍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매년 3월 초가 되면 두 줄기가 꼬인 묘한 형태의 나무 위로 검붉은 꽃이 피는 장관을 보려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유다. 참고로 현재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구례 화엄사 들매화 △장성 백양사 고불매 4건이라고 한다.

    이렇게 꽃소식이 들리니 이제 곧 춘천의 곳곳에도 생강나무꽃이 알싸하게 흐드러질 것이다. 그나저나 꽃은 언제부터 왜 피기 시작했을까. 우리에게 꽃은 아름다운 경이의 세계이지만 식물에게 꽃은 지난한 생존의 결과물이다. 움직일 수 없다는 숙명적 한계를 이토록이나 찬란한 매개물을 만들 수 있었다니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것인지 모른다.

    꽃은 속씨식물이 등장한 이후 나타났다고 한다. 대략 1억만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처음에 꽃은 줄기 맨 위 다발로 된 작은 잎에서 ‘진화’ 혹은 ‘발명’되었다고 한다. 이전의 잎과는 다른 역할을 하며 녹색을 버리고 꽃잎이나 포엽 등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묶인 포로 같은 식물이 ‘여기로 오라’라는 깃발을 휘두르며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그 깃발은 밝은 색깔과 달콤한 냄새, 끈적이는 꽃가루 알갱이를 장착하고 요염하고도 발칙한 신호를 바람에 나부낀다. 심지어 벌에게 전기 신호를 보내고 충전을 돕기도 한다. 꽃은 사계절 피지만 유독 봄꽃이 강렬한 것은 봄과 여름에 나비와 벌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물들어 올 때 배를 띄우는 작전이다.

    벌과 나비는 자신들이 무어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꽃술을 잔뜩 묻히며 하냥 즐겁고, 들에 산에 무시로 피어나는 꽃들도 수분을 하고 자손을 퍼뜨릴 수 있으니 마냥 흐뭇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은 동서고금, 왜 이리 꽃을 좋아하는 것인가. 많은 문사와 가객들이 꽃을 칭송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누가 생일을 맞게 되거나 경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꽃을 선물했다. 꽃처럼 환하고 남들에게 기쁨을 주며 살아달라는 기원이었다. 그렇지만 기실 꽃은 이미 지금의 행복감을 주기 이전에 뭇 생명체를 위해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것은 바로 지구에 산소를 가득 채워놓는 일이다. 만약 지상에 속씨식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꽃은 수백만년마다 색깔, 크기, 모양, 향, 번식 형태 등을 바꾸며 생물학적인 혁신을 꾀해 왔다.

    이 점에서 꽃은 단순히 식물들만의 생식기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설에는 저 옛날 공룡 시대에 새순까지 다 뜯어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은 공룡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독성을 가진 꽃을 개발했고, 설사 먹히더라도 번식하는 방법으로 꽃을 피웠다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꽃은 이미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효시이자 모든 폭력을 막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점점 메말라만 가는 세상에서, 우리 이쯤의 꽃을 보고, 닮고 마침내 스스로가 꽃이 되는 일은 어떨까. 꽃은 가녀리지만, 한없이 서로를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삼경 필진 소개
    -작가, 강원작가회의 회원
    -‘헤이 강원도’,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2,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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