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강원 ‘미래 산업의 꿈’ 물거품 되나⋯플라스마 공장 경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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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강원 ‘미래 산업의 꿈’ 물거품 되나⋯플라스마 공장 경매로

    태백 규제특구 핵심社 그린사이언스
    발전소 못열고 반 년만에 특구 박탈
    보조금 부정 의혹, 업체 수사의뢰
    R&D 사업 몰아주며 혈세 30억 낭비
    강원연구원, 연구보고서 줄줄이 납품

    • 입력 2024.01.04 00:09
    • 수정 2024.01.04 00:10
    • 기자명 진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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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특별자치도에 ‘세계 최초 플라스마 발전소’를 만들고 새로운 에너지 혁명을 불러일으킬 기업으로 기대를 모았던 그린사이언스가 공장을 경매로 내놓는 등 사실상 폐업 위기에 놓였다. 태백 발전소는 제대로 가동조차 해보지 못한 채 개점휴업 상태인 데다 장비 구매 명목으로 받은 보조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원특별자치도가 공들인 ‘바이오매스 청정수소 생산·활용 규제자유특구’는 반년 만에 해제됐고, 자치도 행정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강원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강원연구원은 이번에도 헛발질로 혈세 30억원을 허공에 날리는 데 기여했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강원 미래 산업에 대한 꿈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다. <편집자 주>

    강원특별자치도의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으며 글로벌 플라스마 기술 선도업체로 꼽혔던 그린사이언스 태백 공장이 최근 경매에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업체는 플라스틱 그린수소 생산 실증 사업을 위해 장비 구매 명목으로 도 보조금 18억원을 받았지만, 이 돈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2일 본지가 태백 소재 그린사이언스 공장과 발전소를 방문했는데, 각각 모두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사업을 발주한 강원테크노파크는 보조금 부정 사용 등의 혐의로 업체를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했다.

    그린사이언스는 세계 최초로 플라스마 발전소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다. 플라스마란 고체, 액체, 기체에 이은 제4의 물질상태로, 고온에서 이온과 전자가 분리돼있는 물질을 말한다. 그린사이언스는 2011년부터 ‘마이크로 웨이브 플라스마 토치’라는 신기술을 이용해 플라스마 발전소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태백에 발전소 건립을 추진했다. 강원의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강원연구원은 그린사이언스 의뢰로 작성한 연구보고서에서 플라스마 산업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발전소는 2021년 4월 완공했지만, 2년 넘게 발전소 가동 소식은 들려오지 않으면서 의구심을 자아냈다.

     

    ​2일 태백 철암동 소재 그린사이언스 공장의 문이 잠겨 있다. 그린사이언스의 경영 악화로 ‘바이오매스 청정수소 생산·활용 규제자유특구’는 반년 만에 박탈당했다. (사진=진광찬 기자)​
    ​2일 태백 철암동 소재 그린사이언스 공장의 문이 잠겨 있다. 그린사이언스의 경영 악화로 ‘바이오매스 청정수소 생산·활용 규제자유특구’는 반년 만에 박탈당했다. (사진=진광찬 기자)​

    그 사이 강원자치도는 지난해 5월 태백 일대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 청정수소 생산⸱활용 규제자유특구’ 자격을 따냈다. 특구 사업 핵심 근거지는 그린사이언스가 만든 발전소였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전소 가동 소식이 없다는 점에 이상함을 감지하고 강원자치도에 특구 지정 해제 의견을 전달한 뒤에서야 자세히 들여다보니, 업체는 이미 경영 부실로 국세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당초 해당 특구(51만3565㎡ 규모)에서는 2027년 5월까지 폐목재 등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청정수소를 생산·활용하는 사업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린사이언스를 비롯해 ㈜SK에코플랜트, ㈜제이엔케이히터, ㈜제아이엔지와 강원테크노파크 등 5개 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그러나 그린사이언스의 부실이 밝혀지면서 지난해 11월 특구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업은 물거품이 됐다. NICE평가정보에 따르면 그린사이언스의 2022년 12월 기준 당기순손실은 12억7000만원에 달한다. 애초에 190억원을 웃도는 특구 사업 규모를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2일 태백 철암동 소재 그린사이언스 발전소의 문이 잠겨 있다. 그린사이언스의 경영 악화로 ‘바이오매스 청정수소 생산·활용 규제자유특구’는 반년 만에 박탈당했다. (사진=진광찬 기자)
    2일 태백 철암동 소재 그린사이언스 발전소의 문이 잠겨 있다. 그린사이언스의 경영 악화로 ‘바이오매스 청정수소 생산·활용 규제자유특구’는 반년 만에 박탈당했다. (사진=진광찬 기자)

    태백 현지 취재 결과 그린사이언스 공장은 이미 한참 전부터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본지가 방문한 공장 내 사무실 집기는 그대로였지만 오가는 사람은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사무실 어떤 전화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농공단지에 입주한 다른 업체 직원들은 “한두달 전부터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평소 이 대표와 친분이 있다는 한 인사는 “발전소와 공장 모두 자금난으로 가동이 중단됐지만 이 대표가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도 안팎에서는 그린사이언스가 그동안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플라스마 기술 전체가 통째로 사기극이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팽배하다. 이 업체는 2013년 부지매입·설비투자 비용으로 보조금 10억4500만원을 받고 대전에서 태백 장성농공단지로 이전했다. 당시 도정과 그린사이언스는 최첨단 플라스마 가스화 발전 기술 실증화가 성공하면 낙후된 폐광촌에 산업 발전, 일자리 창출 등을 이끌 수 있다는 화려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한영(태백) 강원도의원은 “10년 전쯤 그린사이언스 대표가 태백시민 1000명을 모아두고 한 무대에서 플라스마 산업 시범까지 보였는데, 지금 말하면 사기극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강원자치도의 피해는 극심한 상태다. 그린사이언스는 2021년 플라스틱 그린수소 생산 실증 사업과 함께 무연탄 활용 R&D 기술개발 실증사업(총 보조금 4억5000만원)을 맡았지만, 역시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중단됐다. 강원테크노파크는 지난해 7월 사업이 계속 지체되자 ‘불성실 중단 조치’를 내렸다.

     

    2021년 3월 태백 철암동 그린사이언스 철암 발전소 완공식에서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왼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한 내빈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사진=강원도)
    2021년 3월 태백 철암동 그린사이언스 철암 발전소 완공식에서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왼쪽에서 네 번째)를 비롯한 내빈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사진=강원도)

    이 과정에서 강원자치도내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강원연구원은 2010년대부터 ‘첨단 청정에너지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 ‘폐석활용 플라스마 가스화 발전소 및 유리산업플랜트 조성 타당성 분석’ 등 그린사이언스가 위탁한 수백장짜리 연구 보고서를 줄줄이 발간해 오히려 당위성을 더했다. 2013년에는 그린사이언스와 함께 ‘플라스마 발전과 에너지 산업’을 주제로 한 정책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도내 지자체 공무원은 이번 일이 “자료상 지원 조건에만 맞으면 철저한 검증 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정의 한계를 보여준다”며 “싱크탱크인 강원연구원부터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지원 대상 기업체가 진짜 기술력이나 현실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할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기홍 강원도의회 부의장은 “기술 상용화 사업이 아니라 기술 실증사업에 세금을 투입했는데, 남들 사업의 기술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는 데에 세금을 주는 관행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백=진광찬 기자 lightchan@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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