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사라지는 것은 진짜 아름다운가?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사라지는 것은 진짜 아름다운가?  

    • 입력 2023.11.30 00:00
    • 수정 2023.11.30 14:03
    • 기자명 최삼경 작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삼경 작가
    최삼경 작가

    얼마 전,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왔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이 70이 될 때까지는 건강검진 삼아 일 년에 한번은 다녀오자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11월 중순의 날씨였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 시기였지만 출발점인 한계령 휴게소에 부는 바람은 장난이 아니었다.

    장갑을 꼈음에도 배낭을 단속하는 손끝이 아려왔다. 요사이 이런저런 일로 산에도 다니지 못했는데 완주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하며 첫발을 내 디뎠고, 그 걱정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붙은 것은 한계삼거리 쯤에 이르러서였다.

    한계삼거리부터 끝청, 중청까지는 능선길이라 조금은 편해졌지만 내설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받아야 하는 만큼 겨울철 산행 길로는 조금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은 발아래 펼쳐지는 바위들의 기묘한 형상을 보거나 눈길을 들어 끝없이 넘실거리는 산자락을 보면 깨끗이 사라진다. ‘이 맛이야! 이 맛에 산에 드는 거지!’ 바람은 차지만 눈은 따뜻해진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에서 동료들과 “멋지다, 추웠다, 힘들었다, 그래도 좋다. 앞으로 더 힘들거다.” 등등 수다를 떨며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다시 다리에 힘이 붙고 산이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코스를 걷는다. 그러고 보면 설악산 산길에는 산이 갖출 수 있는 모든 길을 다 갖고 있다. 일테면 암벽, 너덜, 오솔, 급하강, 급상승, 갈대나 산죽, 풀, 흙, 바람, 햇살, 계단 등등이 다 갖춰져 있다. 이 자연의 성찬을 그저 오롯이 걸어가면 된다. 참으로 고마운 산이고 행복한 길이다.      

    그렇게 끝청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힘든 코스, 중청을 향해 오르면 설핏 저 멀리 대피소가 어릴 적 외가집 마냥 보인다.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설악산에는 다섯 개의 대피소가 있는데 중청 대피소가 가장 높고, 대청봉이 십분만 걸어 올라도 될 만큼 산길통행의 요지에 놓여있다.

    그런데 대피소 밖에 커다란 짐들이 쌓여 있어 사람들에게 물으니 대피소 숙박시설을 없애고 휴식시설만 새로 짓는다는 거였다. 중청 대피소는 1983년 ‘대청 산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자들이 건물을 짓고 물건을 팔았다. 그러다가 1994년 국립공원 소유로 바뀌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안전성 진단에 문제가 있고, 고산 환경 훼손이 철거의 명분이었다.

    글쎄, 사람들이 배낭을 멘 무게가 얼마나 될까. 대체 휴게소로 희운각 대피소를 확장한다는데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올라와 힘이 빠진 등산객이 어떻게 2㎞가 넘는 급 내리막을 걸어 희운각까지 갈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이것은 일개 대피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간 이 대피소가 있어서 느꼈던 행복감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어디에서 알아야 하는가. 외국을 나가야 하는가? 혹시 중청대피소와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 근무가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의 유배지라 하는 데 그런 이유는 없었을까? 또 고산의 환경훼손이 우려된다면서 끝청에 케이블카는 왜 건립이 되는가.

    해마다 1만3000여명의 등산객에게 사랑받아온 중청대피소는 이제 그 우체통만 덩그랗게 남는 것인가. 이렇게 후딱 철거하고 뚝딱 새로 짓는 것이 능사일까. 조금 낡아가더라도 보수하며 오래오래 사용하는 것이 전통이고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로 간만의 대청봉 거센 바람들이 더욱 어수선해진 느낌이었다.

     

    ■ 최삼경 필진 소개
    -작가, 강원작가회의 회원
    -‘헤이 강원도’,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2,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출간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