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간 마을 지킨 춘천 어린이집 폐원 위기⋯출산율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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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년간 마을 지킨 춘천 어린이집 폐원 위기⋯출산율 ‘쇼크’

    사북면 신포어린이집 ‘폐원 기로’
    원아 수 부족해 인건비도 충당 못 해
    올 2분기 강원 합계출산율 0.87명 ‘뚝’
    “지역소멸 현실화⋯근본 대책 마련 절실”

    • 입력 2023.10.02 00:02
    • 수정 2023.10.08 00:13
    • 기자명 진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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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사북면 신포어린이집에 저출생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원아 수가 급감, 폐원 위기에 놓여있다. (사진=진광찬 기자)
    춘천 사북면 신포어린이집에 저출생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원아 수가 급감, 폐원 위기에 놓여있다. (사진=진광찬 기자)

     

    “동네에서 유일한 어린이집인데, 매년 폐원 위기예요. 아기 울음소리가 안들려요.”

    지난달 19일 춘천 사북면 신포어린이집. 도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려한 자연환경에 둘러 쌓인 산골 어린이집에는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막내 아이를 보내는 류해운(41)씨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사북면 17개 마을에서 단 한 곳뿐인 이 어린이집이 원아 수 부족으로 폐원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류씨는 아이들에게 도심 어린이집에서 느낄 수 없는 농촌 경험을 해주고자 10년 전 사북면으로 귀촌했지만, 유일한 아이 보육처를 잃게 생겼다. 신포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 일대 아이들은 차로 왕복 1시간 거리를 이동해 등·하원 해야 한다.

    류씨는 “만약 신포어린이집이 폐원하면, 다시 도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첫째와 둘째도 인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어 어린이집이 사라지면, 동네의 교육 인프라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며 “사실상 마을 소멸이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이집정보공개포털과 강원특별자치도 등에 따르면 도내 어린이집은 2018년 1086곳에서 지난해 906곳으로 16.6% 줄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들면서 어린이집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세대가 증가하면서 인구 절벽에 이어 도시 소멸까지 우려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및 2분기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강원자치도 합계출산율은 0.87명으로 역대 최저치(분기 기준)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0.70명)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여성이 일평생 출산하는 아이 수가 채 1명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강원자치도 출산율은 지난 1분기 1.03명을 기록하면서 세종(1.19명)·전남(1.09명)에 이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1명대였으나 또다시 1명대 벽이 깨지고 말았다. 통상적으로 출생아 수는 연초에 늘어나고 연말로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만큼 3·4분기 합계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원아 수가 60명을 웃돌았던 신포어린이집은 올해 원아 수 8명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사진=진광찬 기자)
    한때 원아 수가 60명을 웃돌았던 신포어린이집은 올해 원아 수 8명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사진=진광찬 기자)

     

    1994년 문을 연 신포어린이집도 인근 마을 영·유아들의 보육을 도맡으면서 한때 원아가 60명을 넘기도 했다. 부모·조부모들이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의 역할을 하면서 지역을 지키는 한 축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저출생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고 원아 수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2000년대만 해도 매년 30~40명이 어린이집을 찾았지만, 2014년부터는 20명도 채우지 못했다. 2020년에는 13명, 2021년 10명, 2022년 9명까지 줄었다. 결국 올해는 단 8명의 원아로 새 학기를 맞았다.

    문제는 원생들이 내는 보육료로 교사 인건비 등 기본적인 운영비를 충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보육 교직원 인건비 지급기준’에 따르면 유아반(만 3∼5세)은 8명 이상이어야 보육교사 인건비 30%를 지원하는데, 이 조건마저 채우지 못했다.

    농어촌 특례지역은 올해 해당 지급기준이 완화돼 일단 운영하고 있지만, 내년에도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또 원아 수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매달 들어오는 보육료 전액을 인건비로 메꿔도 이미 적자인 실정이다. 교재·교구 구매, 시설 보수 등 아이들을 위한 여건을 개선할 형편조차 안 되는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송명희 신포어린이집 원장은 “매달 100만원가량을 쓰면서 어린이집 운영하고 있는데, 포기하자니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며 “통학버스라도 망가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모든 아이가 평등한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현실에 맞는 조례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올해 2분기 강원자치도 합계출산율이 0.87명으로 역대 최저치(분기 기준)를 기록하면서 지역소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픽=MS투데이 DB)
    올해 2분기 강원자치도 합계출산율이 0.87명으로 역대 최저치(분기 기준)를 기록하면서 지역소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픽=MS투데이 DB)

     

    도내 출생아 수는 2015년 이후 7년 연속 내림세가 이어지면서 지난해에는 72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 작성 이래 처음 2020년 8000명 선이 깨졌고 2002년(1만5314명)과 비교하면 20년 새 출생아가 절반으로 줄었다.

    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결혼·출산 자체가 늦어지면서 고령 산모 출산율은 늘었지만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출산율이 줄면서 전체 출산율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며 “연도별 합계출산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0년부터 봤을 때도 분기 기준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했다.

    정부는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바꾸는 등 내년도 예산안에 저출산 대책을 대거 담았다. 육아휴직 중인 직장인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육아휴직급여 지급 기간을 12개월에서 18개월로 확대했다. 신생아 출산 가구에 대한 공공주택 분양 특별공급 제도도 신설할 방침이다.

    다만, 출산율이 반등할지는 의문이다. 특히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농어촌지역 현실에 맞는 보육 환경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주상 춘천시의원은 “농촌 붕괴·소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만큼 어린이집 운영의 문제가 아닌 춘천지역 인구감소로 인식해야 할 심각한 문제”라며 “교육·돌봄을 위한 행·재정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광찬 기자 lightchan@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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