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천주교와 춘천 : 곰실공소와 죽림동 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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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천주교와 춘천 : 곰실공소와 죽림동 주교좌성당

    • 입력 2023.08.24 09:56
    • 수정 2023.08.24 16:05
    • 기자명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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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천주교의 강원도 전래는 신해박해(1791년)·을묘박해(1795년)·신유박해(1801년)를 겪으면서 서울과 경기도에 모여 살던 교우들이 충청도와 강원도 등의 산간벽지로 숨어들었고, 신유박해 직후에 경기도 용인 태생의 신태보 베드로(1768~1839)가 40여 명의 교우를 이끌고 갖은 고생 끝에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으로 피난 온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로부터 87년 후인 1888년에 파리 외방 전교회 르 메르 신부가 조선 대목구장 뮈텔 민 주교에 의해 주임으로 파견되면서 풍수원 성당이 강원도 최초 본당이 되었다.

    천주교의 춘천 시작은 1890년대로 올라간다. 춘천 동면 노루목 태생인 엄주언 말딩(마르티노·1872~1955)은 청년 시절 「천주실의」와 ‘주교 요지’를 읽고 감명을 받아서, 1893년 맏형과 함께 일곱 식구 모두를 데리고 천주교 발상지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1894년 형과 함께 프랑스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가족 모두 세례를 받은 1896년 춘천으로 돌아왔지만, ‘천주학쟁이’라는 냉대를 받으며 고향 마을에서 쫓겨나 동내면 고은리 웃너브랭이(廣坪)에 정착한 것이 시초다.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모습. (사진=천주교 춘천교구 누리집)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모습. (사진=천주교 춘천교구 누리집)

     

    말딩은 이곳에서 주경야독하며 근검함으로 사람을 감화시켰고 이후 아랫너브랭이로 옮겼다가 1910년 다시 곰실로 옮겨 예배당을 마련하니 이곳이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전신인 곰실공소다. 말딩은 1920년 새 예배당을 마련하고 풍수원과 서울에 상주 사제 파견을 간청하였다. 그해 9월 초대 김유룡 필립보 사제가 부임하면서 곰실공소는 본당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1928년 죽림동으로 본당이 옮겨가기 전까지 본당으로 역할을 다하였다.

    말딩은 1928년 현 죽림동 성당 아래 땅을 사서 춘천 본당을 마련하며 죽림동 시대를 열었다. 1938년 춘천 본당 제5대 주임으로 부임한 퀸란 토마스(1896~1970) 신부는 당시 본당 근처에 현재 성당 자리를 매입했고, 1946년 복직하여 1949년 4월 본당 착공식을 하였다.

    거의 완공에 이르렀던 죽림동 본당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 유엔군의 대반격 작전 중 한쪽 벽면이 무너지고 사제관 등 부속 건물이 대파되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미군과 교황청의 지원으로 1953년 건물 대부분이 복구 완료되었다. 전쟁 중 퀸란 신부는 인민군에 체포되고 연행되어 죽음의 행진을 하다가 1953년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교황사절 서리를 겸하였다. 1955년 춘천교구가 지목구에서 대목구로 승격하자 초대 춘천 대목구장으로 부임하며 주교로 서품되었다. 다음 해인 1956년 6월 8일 새롭게 단장한 주교좌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곰실공소 모습. (사진=천주교 춘천교구 누리집)
    곰실공소 모습. (사진=천주교 춘천교구 누리집)

     

    퀸란 주교는 춘천 천주교 역사에 있어 엄주언 말딩과 함께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아일랜드 출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1934년 국내로 들어왔다. 1938년 죽림동성당 주임으로 파견되어 제2대 춘천지목구장(1940~1941)과 제4대 춘천지목구장(1945~1955)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춘천대목구장(1955~1962)과 초대 춘천교구장(1962~1966)을 역임했다.

    퀸란 주교는 춘천교구 최초 주교로서 죽림동 주교좌성당을 기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으며, 의료활동을 통한 선교에 관심을 기울여 춘천에 성골롬반의원(1956년) 삼척에 성요셉의원(1961년) 강릉에 갈바리의원(1964년)을 개원했다. 1958년 효자동에 주교관을 준공하여 교구의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으며, 1964년 강원도의 협조를 받아 성심여자대학(강원도 최초 여자대학, 한림대학교 자리에 위치)이 개교하도록 힘을 기울여 젊은이를 위한 교육에도 공헌했다. 퀸란 주교는 자신이 개원한 삼척 성요셉의원에서 1970년 12월 31일 선종하기까지 천주교 춘천교구에 위대한 발걸음을 남긴 참 성직자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퀸란 주교가 이룩한 춘천 근대문화유산  
    1. 죽림동 주교좌성당 2003년 6월 25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4호로 지정
    2. 소양로성당 2005년 4월 15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
    3. 춘천교구 주교관과 교육원 2019년 2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743호로 지정

     

    ■허준구 필진 소개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춘천시 문화도시 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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