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 ‘교육도시’라 불리던 시절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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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이 ‘교육도시’라 불리던 시절을 회상하며⋯

    ■김혜란 국민의힘 강원도당 법률자문위원장(법무법인 일헌 변호사, 전 판사)

    • 입력 2023.08.24 00:00
    • 수정 2023.08.25 00:06
    • 기자명 김혜란 국민의힘 강원도당 법률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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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국민의힘 강원도당 법률자문위원장
    김혜란 국민의힘 강원도당 법률자문위원장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분위기로 인해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그 때 그 시절,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육림고개 위에 위치했던 옛 춘천시립청소년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시절 우리 집엔 변변한 책 한 권 굴러다니지 않았지만 그 곳에는 언제나 열람실 책장마다 꽉꽉 채운 수많은 책이 나를 반겨줬고, 난 바라보기만 해도 설렜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출근했고, ‘도장깨기’ 식으로 도서관의 책들을 한권 한권씩 섭렵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매점으로 달려가 컵라면을 사 먹고 다시 오후 내내 책 속에 파묻혀 행복했었다. 강원대 후문 근처에 살았던 집을 오가는 왕복 버스비와 사발면, 음료숫값까지 1000원이면 넘치고 남는 행복한 하루였다. 그렇게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그 시절 추억이 아련하다.

    2023학년도 대입에서 춘천지역 수험생 가운데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 학생은 1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정시가 아닌 수시였다. 지난 몇 년간 정시를 통해 춘천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원주나 강릉은 춘천보다는 그래도 사정이 더 나은 편이다. 

    과거 춘천에서만 한해에 수십 명, 많게는 100명 가까이 서울대에 진학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젠 춘천에서 전교 1등을 해도 서울대에 가기 어렵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특히 수능시험만으로 입학하는 정시 전형은 하늘의 별 따기다. 우리 춘천의 아이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입시제도가 춘천에만 유독 불리할 리는 없을 터인데 말이다.

    어느덧 인구부터 춘천을 앞지른 원주는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사업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고, 국가산업단지로 선정된 강릉은 ITS 세계 총회, 강원도청 제2청사 등 연이은 호재가 들려오고 있다. 반면 춘천은 ‘수부도시’라는 자존심밖에 남지 않았다.

    그 도시의 경쟁력은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 양성에 달렸다. 그렇다면, 춘천지역의 기성세대들과 리더들은 우리 지역의 인재 양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학업부담에서 아이들을 해방시키겠다는 어설픈 실험정신의 결과, 전대미문의 최저 학력수준과 지방에선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패배감만을 키워왔다.

    춘천의 상위권 중학생들은 일찌감치 춘천을 떠나고 있고, 고등학생들은 서울 지역 대학 진학을 위해 문 닫힌 정시 대신 내신에 목매며 수시에 매달리고,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고향인 춘천을 떠나고 있다. 이제 아무도 더 이상 춘천을 ‘교육의 도시’라 부르지 않는다.

    강원도 내 인근 50여 개 중학교 전교 1등들이 모여들었다던 춘천의 지역 명문 고교는 그 명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교육도시라는 타이틀은 제주나 청주에 뺏긴 지 오래다. 얼마 전 기대를 모았던 강원특별자치도의 교육특구와 국제학교설립 등의 교육 특례들은 교육부의 반대에 진척 없이 멈춰 서 있다.

    흔히 강원도의 현실을 얘기할 때 ‘3%’란 말을 한다. 인구도 3%, 지역 내 총생산도 3%... 여기에 국회의원 수 또한 전국 3%에도 미치지 못한다. 바로 이 ‘3%’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수한 지역의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얼마 전,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난 뒤 근처에 위치한 춘천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웬만한 키즈카페보다도 좋은 시설을 갖춘 도서관, 나의 학창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지만, 좀처럼 책을 꺼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본 사람이 너무나 많다.”

    어느 미국 사상가의 말이다. 나 또한 어린시절 그랬듯이 많은 춘천의 아이들이 춘천을 떠나지 않고도 꼭 새로운 시대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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