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느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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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느린소리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 입력 2023.08.21 00:00
    • 수정 2023.08.21 14:10
    • 기자명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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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IQ)가 80이 안된다는 이유로 학교 입학을 거부당한다. ‘일반’ 학생들과 함께 배우기에는 지능이 미달되니 ‘특수’ 학교에 가라는 권유를 받는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르고 포레스트도 누구나처럼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라고 입학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너무나 끔찍한 댓가를 치루고 나서야 아들을 일반 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1994년도에 개봉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은 지능지수가 70이 조금 넘는 경계성지능인이다. 보건학이나 복지학에서 ‘경계성 지능’은 표준화된 지능지수 검사에서 71~84 사이의 점수를 얻은 집단으로 ‘정상’지능과 ‘장애’지능 사이에 있다고 규정한다. 아마도 지능검사에서 85점이 정상인에 포함될 수 있는 최소 경계선인 것 같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으로서 지적인 기능을 측정하여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니 그 기준은 무엇일까? 통계적 정규분포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지능의 분포 곡선 모델에 선을 그어 누구는 정상이고 누구는 비정상이고 또 누구는 경계에 있다고 집단화 하는 것은 합당한 구분인가? 성별, 피부색, 키처럼 지능도 그냥 타고 태어난 개인적인 속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영화 속 어머니의 항변이 이해된다. 내가 보기에 이 오래된 영화의 주인공은 초반 잠깐 등장하는 어머니다. 그녀의 희생과 가르침 덕에 포레스트 검프는 급속한 변화를 맞는 현대사의 장면 속에서 자신만의 능력과 속도를 찾아 인생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낸다.

    영화는 감동적이었지만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다는 경계선지능인들은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 ‘중심’에 있다. 타고난 개인적 속성으로 느리게 배우는 경계선 아이들은 속도전과 성적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학교에서 늘 뒤처진 ‘학습부진아’가 되어 있다. 상명하복과 위계에 따른 빠른 일처리가 미덕인 군대와 직장에서 경계선 청년들은 ‘관심사병’과 ‘답답한 고구마’가 되어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경계선지능인이 전체 인구의 15% 정도에 해당한다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하기엔 너무 많다. 제도의 지원과 지역의 지지가 필요하다.

    최근 춘천에서 경계선 지능인과 관련한 사업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비영리 스타트업 ‘느린소리’가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경계성 지능인 가족 커뮤니티로 2022년 설립된 이후 ‘강원특별자치도 경계선지능인 지원 조례’를 만들고 춘천시가 실태조사를 통해 경계선지능인 단계별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까지 이들이 만든 변화는 매우 극적이었다. 이제는 춘천과 강원특별자치도를 넘어서 국회에서 입법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느린소리’ 최수진 대표의 둘째 딸은 경계선의 느린 학습자이다. 아이에게 더 나은 지원이 보장되는 외국으로 보내라는 권유도 있고, 그럴만한 여유도 있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부했다. 조금 다르게,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환경을 춘천에서 만들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변화를 만드는 춘천의 주인공이다.

    “인생은 초콜렛 상자와 같단다. 무엇이 나올지는 열어 먹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단다. 인생도 그렇단다.” 영화의 대사다. 아이들이 경계로 구분되지 않고 모두 저마다 쓴 맛과 단 맛이 섞인 초콜렛 상자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한 입 깨무는 도시를 ‘느린소리’가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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