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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춘천의 문화와 내평 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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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춘천의 문화와 내평 분교

    • 입력 2023.08.03 00:00
    • 수정 2023.08.03 11:45
    • 기자명 최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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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 작가
    최삼경 작가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의 오래된 분교에 여름이 오면 나무도 푸르고, 바람도 좋아서 멀리 몇 개의 산등성이는 절로 넘실넘실 춤을 추는 듯하다. 이맘때면 모든 산천이 보여주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더욱 특별해 지는 것은 김차섭, 김명희 두 분이 30년 넘게 미술 작업을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지난 1990년 분교를 매입한 부부화가는 봄, 여름, 가을이면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겨울이면 뉴욕으로 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뉴욕에 있다가 이곳으로 돌아오면 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김차섭 화가는 경주에서 자라 서울대 미대를 거쳐 1967년 파리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출품을 했고, 1969년 동료 청년 미대생들과 함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그룹)를 창립하여 제도권 미술에 반발하는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이후 1970년 도쿄 판화 비엔날레, 1971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김명희 화가는 서울 출신으로 외교관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과 영국에서 성장을 했고,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이화여고 미술교사 동료로 지내던 김차섭과 함께 유관순기념관의 세로 3.8m, 가로 4.4m의 벽에 ‘더 모먼트 오브 액션’(The Momente of Action)을 함께 그린다. 이때 둘은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이후 김차섭은 록펠러 재단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 김명희 씨와 결혼했으며, 둘이 함께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김차섭은 발상법이 특이했다. 1년 내내 그림 대신에 직각 삼각형과 무한대를 연구하기도 했고, 기마민족의 원형을 찾아 대륙횡단 열차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키타이족의 노마드적 삶을 우리 민족의 원형으로 결론 내렸다. 그림에 어떤 감정의 찌꺼기가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 김차섭은 극 사실적인 강가의 돌멩이 그림과 함께 국내에서는 생소한 에칭작업으로 미국화단에 충격을 던졌고,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됐다.

    김명희 화가는 미국의 높은 물가에 미술을 하랴, 생활도 꾸려가랴 엄청 고생을 하다가 뉴욕 중심부에 옷가게를 차려 성공을 거두어 연필 소묘 작업을 접고 본격적 그림을 시작했다. 김명희는 춘천 내평의 분교를, 정확히 말하자면 내평분교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와 연못과 바람을 좋아했다. 오래된 폐교에 앉아 어떤 작업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벽에 붙어 있는 칠판을 발견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숱한 사연이 오고 갔을 칠판, 그 칠판에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 작품들은 김명희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리고는 작년 이때쯤 김차섭 화가는 작고했다. 자연과 인간, 인간 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작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고인은 생전에 내평분교 부지에 미술관 건립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오는 19일 춘천 베니키아 베어스 호텔에서는 김차섭 추모 1주기 행사 겸 김차섭 기념사업회가 발족될 예정이어서 서울의 많은 미술 관계자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춘천의 문화를 높이기 위한 귀한 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평분교의 소나무들은 푸른빛을 더하고 있다.

     

    ■최삼경 필진 소개
    -작가, 강원작가회의 회원

    -‘헤이 강원도’,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2,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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