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선비 김영하가 기록한 춘천 「수춘지(壽春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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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선비 김영하가 기록한 춘천 「수춘지(壽春誌)」

    • 입력 2023.06.29 00:00
    • 수정 2023.06.29 08:06
    • 기자명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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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수춘(壽春)은 춘천을 달리 부르는 지명이다. 수(壽)는 인간이 누리고 싶어 하는 오복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이러한 장수에 대한 기대는 봄이 되면 더욱 선명해지는지도 모른다. 「수춘지(壽春誌)」에서 ‘지(誌)’는 ‘자세하게 기록한다’는 의미로 마음에 생각하고 있던 사실을 말하고 그것을 글로 써서 남겼다는 뜻이다. 즉 「수춘지(壽春誌)」는 춘천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자 증언이 된다.

    「수춘지」 저자 김영하(金泳河) 선생은 명문가 후손으로 1879년 춘천에서 태어났고 그 몰년은 1960년대이나 확실하지 않다. 선생의 본관은 경북 선산(善山)이며 절의(節義)로 이름을 떨쳤던 고려말 문신 김주(金澍)와 효와 도의(道義)로 저명한 우정(憂亭) 김경직(金敬直, 1569~1634)이 선조이다. 김경직은 춘천에서 유배 생활하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과 우두정에서 도의로 친분을 맺고 「소학(小學)」을 몸소 실천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며, 상촌과 함께 도포서원에 배향된 명문 가문의 문을 열었다. 

    초대 제헌의원과 2대 의원을 지낸 최헌길(崔獻吉)은 서문에서 「수춘지」 제작 과정을 비롯하여 춘천의 대표 장소와 인물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고을의 자제(子弟)에게 「수춘지」를 읽도록 한다면 선왕(先王)의 고궁(古宮·춘천이궁)과 장절(壯節:申崇謙)의 높은 주검, 진락(眞樂·이자현) 청한(淸寒·김시습)의 높은 풍모와 깨끗한 절개, 문의(文懿·박항) 우옹(憂翁·김경직)의 큰 공훈과 탁월한 자취, 소양(昭陽) 자양(紫陽)의 긴 강, 봉의(鳳儀) 우수(牛首)의 명산(名山), 곡운구곡(谷雲九曲)의 빼어난 절경, 국사봉(國士峰) 망국단(望國壇)의 애달픈 눈물이 또렷하게 모두 어제와 같아서, 보고 느끼어 천년이 지나서도 흥기(興起) 시키고 우리 조국의 정신(精神)을 잘 살필 수 있어서, 아마도 만고(萬古)에 이르도록 세상 교화에 보탬이 있고 또한 충분히 한 나라 역사에 채록(採錄)될 것이다.

    대룡산에서 바라본 안마산과 국사봉. (사진=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대룡산에서 바라본 안마산과 국사봉. (사진=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화서학파의 맥을 이은 김영하 선생이 걸어온 길은 고단하고 지난(至難)하였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 국사봉에 태극단을 쌓고 이곳을 춘천지역 항일투쟁의 구심점으로 만든 사건은 「수춘지」 전체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수춘지」에 따르면 선생은 41세 되던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춘천 국사봉(國士峰)에 고을 사람 200~300명을 이끌고 와서 태극단(太極壇)을 쌓고 참석자를 대표하는 마을 이장 여덟 명과 함께 팔괘와 태극을 상징하는 소나무 아홉 그루를 직접 심었다. 이후 고종의 국장과 소상 대상을 치르면서 선생을 비롯한 춘천지역 인사들이 찾아와 통곡하며 조문(弔文)하고 시를 지었다. 이로써 국사봉은 춘천은 물론 국내 주요 항일(抗日)투쟁의 근거지로 떠올랐으며, 의병 정신의 발현과 조국 독립을 향한 또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동하였다.

    「수춘지」에서 주진하(朱鎭夏)는 국사봉 관련 기문에 ‘선생이 당시 국사봉 아래에 와서 살고 있었으며, 국사봉이란 이름을 얻게 된 유래가 오로지 선생이 지닌 인품과 그 정신에서 기인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1993년 12월 춘천시와 춘천문화원은 국사봉에 ‘망제탑(望祭塔)’을 세우고 그 당시 시를 지었던 16인 시문을 탑에 새겼다. 이전 선생 주도하에 이루어진 ‘태극단(太極壇)’과 태극과 팔괘를 상징하는 ‘태극팔괘구송지(太極八卦九松址)’는, 의병 투쟁에서 독립투쟁으로 전환하여 광복을 지향했던 항일 정신의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송은(松隱) 김영하 선생의 기록 정신으로 맥국 시기부터 1950년대 춘천의 역사와 문화까지 포함하여 탄생한 기록이 「수춘지」이며, 이는 면면히 흐르는 춘천의 자발·헌신·협동의 충의 정신을 계승 발현한 기록이자 증거라 할만하지 않겠는가!

    ■허준구 필진 소개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춘천시 문화도시 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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