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경보 소동, 잘 된 일이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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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경보 소동, 잘 된 일이라는 사람들

    • 입력 2023.06.15 00:00
    • 수정 2023.06.16 09:05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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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2국장

     

    지난달 31일 오전 6시41분. 서울 시민 중 수백만 명이 이른 아침 가슴이 철렁한 경험을 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착한 휴대폰 문자 탓이다.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시민 중에는 실제로 대피 준비를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많은 이들이 친지들의 안전을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그 시각 TV와 인터넷 뉴스 사이트 등에서는 북한이 서해 백령도 방향으로 발사체를 발사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혼란과 공포의 22분이 지나고 오전 7시 3분이 돼서 서울 시민은 어느 정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행정안전부가 ‘서울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는 문자를 재차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란은 지속됐다. 여전히 서울시가 왜 저런 위급재난문자를 보냈는지, 오발령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7시 25분, 서울시가 ‘일상으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재차 보내고 나서야 서울시민들은 출근 준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가 보낸 위급 재난 문자의 내용.(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서울시가 보낸 위급 재난 문자의 내용.(사진=연합뉴스)

    이날 있었던 위급재난문자 사태는 어처구니없는 행정 실수였다. 합동참모본부가 북한의 발사체와 관련 행정안전부에 ‘백령도 경계경보 발령’을 요청하자 행안부는 이를 17개 광역시도에 전파했다. 서울시가 이를 잘못 인식하고 ‘서울지역 경계경보’라는 잘못된 위급재난문자를 보낸 것이다. 더욱이 문자에 이 경보가 ‘왜’ 발령됐는지를 빼놓고 보내면서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결국 오세훈 서울시장이 “혼란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민방위 매뉴얼에는 상황별 발송하는 표준화된 문자 메시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발사체 도발에 대응하는 매뉴얼은 없었다. 그동안 유사한 북한의 도발 사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벌어진 이 나라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이 또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반응이다. 엉뚱한 경보 문자 메시지로 공포에 떤 분노를 터뜨리며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여론이 빗발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라는 여론이 앞선다. ‘큰 일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게 아니다. ‘이번 일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국가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고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란 의미다.

    위 사건을 다룬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보면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 이런 반응이 주를 이룬다. 춘천에 사는 한 20대 청년은 이와 관련 “문자 메시지를 직접 받은 건 아니지만, 소식을 듣고 보니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 당장 내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흔히 개념 없고 무책임한 세대라고 손가락질 받곤 하는 MZ세대의 새로운 모습이다.

    성장 과정에서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도발과 핵개발을 목격한 젊은 세대의 안보 의식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식 수준에 비해 국가 체계는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 실수로 배운다고 하지만 무사안일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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