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감언이설] 영화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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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의 감언이설] 영화제의 시간

    • 입력 2023.05.11 00:00
    • 수정 2023.05.11 08:01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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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바야흐로 영화제의 시간이다. 지난 4월 말 개막해 5월 초에 막을 내린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12월 초까지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에선 영화제가 열린다. 큰 규모의 국제영화제부터, 필자가 일하고 있는 춘천영화제처럼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작은 영화제들까지, 특정한 테마를 지닌 영화제부터 일반적인 콘셉트의 축제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지속성을 지니고 매년 개최된 영화제만 추려 봐도 30~40개는 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가능한 질문 하나. 과연 우리에겐 정말 이처럼 많은 영화제가 필요한 걸까?

    다른 축제와 비교해본다면, 영화제의 ‘가시적 효과’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각종 특산물과 먹거리 축제가 동원하는 인파에 비하면, 나름 북적거린다고 해도 영화제가 지역 축제를 따라가긴 힘들다. 투여되는 공적 자금을 방문객 수로 나눠 객단가를 따져 보면, 영화제는 더욱 비효율적 행사처럼 보인다. 지역 홍보 차원에서도, 지자체에서 볼 때 영화제는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 아니다.

    하지만 ‘플랫폼’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언하건대, 괜찮게 운영되는 영화제 하나가 있으면 그 지역의 문화적 인프라는 눈에 띄게 탄탄해진다. 1년에 일주일 정도 기간을 정해 영화 상영하는 것이 영화제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영화제라는 조직을 통해 이뤄지는 일들은 의외로 많다. 영화를 공부하거나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문화 소외 지역에 찾아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지역의 사회단체와 결합해 의미 있는 이벤트를 만들고, 아직 여물지 않은 아마추어 영화를 상영하며 창작자를 양성하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관객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영화제의 역할은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이다.

    영화제는 지역의 문화적 힘을 형성하는 기간 조직이며, 궁극적으로 그 지역의 문화적 위상을 향상시킨다. 부산, 전주, 부천 등 20년 넘게 영화제를 치른 도시들이 그것을 통해 얻게 된 문화적 이미지는 돈으로 계산하기 힘든 큰 자산이며 이 영화제들을 통해 발굴된 감독들은 한국영화를 이끈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영화제는 소모성 행사가 아닌, 많은 사람과 업체의 협업을 통한 고용효과가 매우 큰 행사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영화제를 통해 적잖은 문화 기획 관련 인력이 양성된다는 점이다. 

    2023년 지자체 총예산이 305조4000억원이고, 정부 예산은 638조8000억원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년에 전국의 지자체와 각종 기관이 영화제에 투여하는 돈을 다 합치면 넉넉잡아 500억원 정도 아닐까 싶다. 정부와 지자체 지출의 0.05% 정도다. 영화제가 한국 사회에서 지니는 문화적 영향력과 미래적 비전을 생각하면, 그렇게 과한 투자는 아닌 듯하다. 향후 더 많은 예산이 투여되면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공적 영역의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점진적 전환이다. 지금까지 영화제가 축제의 한 종류였다면, 이젠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담아내는 플랫폼으로 변해가고 있다. 영화제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입장에선, 그 가치를 대중에게 인정받는 것이 목표다. 좋은 영화제는 좋은 사회를 만든다. 현재 수많은 사업을 준비 중이고 9월 7일부터 11일까지 이어질 춘천영화제도, 춘천이라는 커뮤니티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길 바란다.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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