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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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자’의 추억

    ■[칼럼] 한상혁 콘텐츠 2국장
    고교 평준화 이후 보기 어려워진 '야자'
    강원교육청 '석식 제공 추진'으로 부활할까
    학생들에게 노력과 성취의 경험 돌려줬으면

    • 입력 2023.05.11 00:00
    • 수정 2023.05.11 09:41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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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2국장
    한상혁 콘텐츠2국장

    필자는 약 20년 전 춘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당시에는 학교 수업이 몇 시에 끝나든 밤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보통 ‘야자’라고 줄여서 말하는 그것이다. 간혹 야자에 빠지는 학생들은 사유서를 제출해야 했다. 필자가 다녔던 학교가 유독 그랬는지 모르지만, 야자를 빠지는 학생은 한 반에 한두 명밖에 없었다. 사실상 야자가 강제되는 분위기였다.

    오늘날은 웬만큼 일이 많은 직장인들도 주 52시간으로 정해진 근무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많지 않다. 상기한 고교 시절 공부 시간을 계산해 보면 하루 12시간씩만 잡더라도 주 6일이면 주당 70시간이 넘어가는 강행군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아찔해질 정도다.

    그러나 필자는 그 시절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남아 공부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 무식할 정도로 공부했던 탓에 특별한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힘든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과의 추억 같은 이유도 아니다. 젊은 시절 열정을 바쳐서 무언가에 열중해 보고, 성과를 얻어 본 경험이 이후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춘천을 비롯한 강원지역 고등학교의 ‘야자’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원하는 학생들은 가능하다고 하지만, 참여하는 학생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학부모들이 좋아하지 않고, 공부하려는 학생은 학교에 남아 자습하기보다는 학원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춘천지역은 고교 평준화 이후부터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더욱이 코로나 시기로 비대면 수업이 한동안 강제되었던 탓에 지난 3년 동안은 ‘야자가 없는 학교’가 일반적이었다.

    평준화, 전교조식 교육, 코로나에 시대에 밀려 사라져가던 ‘야자’는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와 학력 신장을 내세우는 강원도교육청은 도내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저녁 급식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학생이 원하는 경우 저녁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하고 그대로 학교에 남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칸막이가 쳐진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서 공부하는 ‘독서실’ 형태를 벗어난 ‘카페형 학습실’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취지다. 학교별로 1~2개 교실을 요즘 유행하는 ‘스터디 카페’ 형태로 개조해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MZ세대인 학생들은 이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인강(인터넷강의)도 듣는다. 더 나아가 기숙사까지 부활시켜 엄격한 생활 관리까지 시행하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교육청 관계자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교육청이 지원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고등학교 ‘야자’ 부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고등학생들을 성적 위주로 서열화한다거나, 비인간적인 주입식 교육이라는 등이다. 한마디로 고등학교가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한 획일적 교육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학교가 강원도 학생들의 학력 저하로 이어지고, 오히려 사교육비 부담을 급증시키는 등의 부작용을 낳는 것을 시민 모두가 봐 왔다. ‘획일화’ ‘서열화’ 같은 애매한 말로 더 나은 미래와 인생의 경험을 위해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막아선 안 된다. 교육청의 선언대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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