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일기] 우리 춘천에서 한 번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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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일기] 우리 춘천에서 한 번 살아볼까?

    • 입력 2023.04.14 00:00
    • 수정 2023.04.15 00:17
    • 기자명 최정혜 춘천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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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9일

    거센 바람을 맞아 휘어버린 텐트 폴대를 수리하러 우리는 가평 어디쯤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기쁜 소식에, 우리는 "닭"갈비를 먹으러 춘천으로 향했다. 

    부모님 두 분 다 춘천이 고향이시고, 나름 "춘천"에서 태어난 춘천사람이지만 명절에 할머니 댁 왔다 갔다 했다는 것만 빼면 그저 흔한 관광객이었던 나, 그리고 평생 춘천에 5번도 안 와본 남편은 당연한 듯 닭갈비 골목에서, 그나마 제일 맛있어 보일 것 같은 닭갈빗집으로 들어가 닭갈비 2인분을 시켰다. 

    금요일 한창 저녁 시간이었는데, 닭갈빗집에는 우리를 빼고 두어 테이블뿐이었다. 한참 나중에야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손님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닭갈비를 먹고 나온 텅 빈 명동 골목 끝엔, "서민주막"이란 이름처럼 소박해 보이는 막걸릿집이 하나 있었다. 막걸리를 한 잔 먹고 기분이 좋아진 남편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우리 춘천에서 살아볼까?”

    도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기분 좋게 하룻밤 머물고 일어나, 주인아저씨가 알려준 강릉집이란 백반집에서 배가 터지게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네이버 부동산에서 찾은 마당 딸린 한옥을 호기심에 보러 갔다. 

    그렇게 ”춘천에 한 번 살아볼까?“란 말 한마디로 시작된 춘천행, 춘천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었던 친절한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구봉산 언저리에서 내려다보이던 산과 강, 호수의 그림 같은 풍경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그 뒤로 석 달 동안 주말마다 춘천으로 향했다. 

    마침 다니고 있던 회사 문제와 겹쳐지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결심이 섰다. 결심은 쉬운데, 막상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부동산, 벼룩시장, 네이버카페 가릴 것 없이 춘천에 나와 있는 웬만한 주택은 거의 안 본 게 없을 정도였다.

    계약하겠다고 말하고 가격 조율까지 했던 집을 주인 할머니 큰아들의 변덕으로 사지 못한 적도 있었고, 처음 내놓은 가격에서 1억이나 올려 부른 주인도 있었다. 세 번 네 번 가본 집도 결국 우리 집이 되지 못했고, 어느덧 나는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춘천에 가는 것도 더는 즐겁지 않고 숙제처럼 느껴지던 2017년 3월 1일, 삼일절 아침 

    “오늘은 집 보러 가지 말고, 그냥 놀러 가자”

    우리는 그날, 춘천에 집을 알아보러 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발이 닳도록 드나들던 부동산 대신, 김유정역에 있는 금병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자석에 끌리듯 입구에 있는 레일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사실 조금 시시하게 느껴져서 그동안 한 번도 타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놀랐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옛 경춘선 라인을 따라 주변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레일바이크 코스는 지금도 게스트분들께 추천해 드리는 최애 여행코스 중 하나이다. 

    레일바이크를 신나게 타고 돌아와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내게,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며 남편이 슬쩍 말을 건넸다. 

    “내가 봐둔 집이 하나 있는데”

    등산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반? 여섯 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던 것 같다. 도착한 집은 그냥 평범한 전원주택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반전은 이 층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었더니 큼지막한 창문 너머로 붉은 노을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 보이는 봉의산의 모습도 선물같이 느껴졌다. 

    다음 손님이 집을 보는 사이 초조한 마음으로 마을 주변을 맴맴 돌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오후 8시, 우리는 어느덧 부동산에 앉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태어나서 했던 일 중 가장 무모했던 선택이 있다면, 아마 이날의 일들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 어떤 준비도 계획도 없이, ”춘천에 한 번 살아볼까?“란 생각으로 벌인 일들이다. 

    그랬던 우리는 서민주막이 있던 육림고개에 “춘천일기”란 공간을 만들었고 처음 춘천에 왔던 날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를 “춘천일기스테이”란 이름으로 운영하며 이렇게 춘천일기란 이름의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다. 

    춘천에 이사와 살게 된 지도 어느덧 6년이 되었다. 스스로도 신기한 건 여전히 춘천이 참 좋다는 점이다. 그동안 발견해 온 춘천의 매력들을 이 지면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도 춘천이 더 좋아질 것 같단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최정혜 필진 소개

    -닭갈비 먹으러 춘천에 왔다

    -춘천에서 눌러살게 된 춘천 찐덕후

    -춘천일기 대표 최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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