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실레마을 주민들이 논밭 대신 연극 무대에 오른다.
지난 1월부터 춘천 신동면 주민들은 농업 현장이 아닌 공연장에 모이고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김유정 소설가를 주제로 한 연극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주민들을 공연장으로 이끈 것은 같은 동네에 있는 문화프로덕션 도모다. 2021년 이곳에 터를 잡은 도모는 농한기 주민들을 연극 무대에 올리는 ‘신동면 연극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5명. 3대째 실레마을에 사는 터줏대감 강덕수(71) 씨를 비롯해 길범수(69)·송옥자(67) 부부, ‘실레마을 1년 살기’를 하다 마을 매력에 빠진 박인숙(68) 씨, 유영희(67) 씨 등이다.
이들의 활동은 벌써 2개월째다. 김유정 소설가의 스토리와 그의 여러 작품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공연 작품으로 ‘봄봄’이 선정되면서 기본적인 발성, 몸짓 언어 등을 배웠다. 점순이부터 봉필, 덕만 등의 배역도 갖게 됐다. 최근에는 전문 분장사의 메이크업을 받고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등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농사로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모자가 더 익숙했던 이들은 극중 의상을 입고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은 주민들에게 뜻밖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친정 부모를 간호하고 있는 박인숙 씨는 최근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아졌다. 어느 날 방송에서 치매 예방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는 내용이 나왔는데 때마침 연극 참여를 홍보하던 도모 관계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연극 연습은 이제 병간호 중 콧바람을 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박인숙 씨는 “집에만 있으면 '엄마!' 하고 강하게 말이 나갔다가도 잠깐 연극 연습을 하고 오면 '엄마~' 하고 부드럽게 목소리가 바뀌더라”며 “연극 연습은 제게 힐링”이라고 전했다.
이번 공연은 김유정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주민들에게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는 기회가 됐다.
10여년 전 신동면으로 이주한 길범수 씨는 정작 주민들이 김유정 소설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공연은 노인회관에 갔다가 막내라는 이유로 반강제로 참여하게 됐는데 현재는 아내 송옥자 씨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길범수 씨는 “춘천교대를 다니던 젊은 시절에는 연극부 활동을 하던 친구들을 보며 바쁜데 한심하다는 생각도 했었다”며 “세월이 흐르고 직접 참여도 해보니 연극은 인생 수업의 중요한 큰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런 공연이 자주 진행되고 마을주민들도 더 많이 참여해 김유정과 연극의 매력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연은 사라진 지역 문화를 되살리는 역할도 한다.
김미아 연출은 노인회관에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방문했다가 과거 증리를 주름잡던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고나이 89세 단원 등으로 활동을 못 한지 10여년이 된 ‘소리패’로 동네 밖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단체였다. 김 연출의 설득에 소리패는 참여를 결정, 공연 전후 특별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역할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모습이다. 그 비결은 김미아 연출에게 있다. 김 연출은 참가자의 면면을 보면서 ‘봄봄’을 공연하기로 했다. 참가자들에 맞춰 배역을 선정하고 극중 ‘뭉태’를 ‘뭉태 母(모)’ 역할로 바꾸는 등 맞춤형으로 바꿨다.
김미아 연출은 “김유정문학촌을 중심으로 다양한 행사와 사업이 진행되는데 주로 관광객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 같다”며 “마을 주민과 함께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비슷한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첫 무대는 오는 3일 오후 5시·4일 오후 3시 신동면 아트팩토리 봄에서 만날 수 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