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젊은춘천] 당신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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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완의 젊은춘천] 당신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나요?

    • 입력 2022.12.21 00:00
    • 수정 2022.12.21 13:32
    • 기자명 낭만농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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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완 낭만농객 대표
    김수완 낭만농객 대표

    얼마 전 밤바다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양양에 다녀왔습니다. 당일 드라이브라 바다를 본 시간보다 차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었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추상적이고 쓸모없는 대화들을 오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함께한 친구들과는 헤어지기 전 “20년 후에 같이 우주 여행을 떠나자”라는 약속을 하며 현재의 여행을 마침과 동시에 다음 여행을 기약하게 됐습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명확한 면을 줍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기대와 여행이 끝난 후의 회상. 필자는 다녀왔을 때 아쉬움이 크게 남는 여행을 유독 좋아합니다. 어떤 면에서 아쉬움은 후회나 미련이라는 감정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때의 그 여행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여행의 순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미련. 하지만 이미 지난 여행의 순간은 앞으로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같은 사람과 같은 장소를 다시 여행한다 해도 흘러 버린 시간 때문에 장소는 더욱 나이 들고 여행을 떠나는 우리조차 그때의 우리가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여행을 삶 전체와 비교해 보면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삶은 유한하고 소멸되어 가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필사적으로 지금 순간의 행복함을 찾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필자는 지역에 있는 방치 공간을 개조해 관광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폐 창고를 영화관으로 만드는 일, 빈 한옥을 개조해 숙박시설로 만드는 등의 일입니다. 이런 업을 통해 필자가 만든 공간에서 다양한 여행객들을 만나며 그들의 경험을 들으면 여행에 대한 가치관이 더욱 단단해지곤 합니다.

    같은 공간을 여행하더라도 어떤 계절에 누구와 함께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렇듯 같은 공간이라도 이곳을 채우는 경험은 온전히 여행을 다녀간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여태껏 경험했던 필자의 여행을 회상하고, 필자의 공간을 여행했던 타인의 경험을 듣다 보면 재미난 상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필자를 집게로 끄집어 올려 고도 높은 시선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면, 여행도 공간도 삶도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여행, 공간, 삶 모두 우리에게 그곳에서 스스로 결정해야 할 선택지를 던질 뿐입니다. 문득 우리를 낯선 환경에 떨어뜨리며 무방비 상태에서 스스로 책임져야 할 선택들을 줍니다. 그 선택들에 답을 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어제보단 조금 더 성숙한 하나의 인간이 됩니다.

    필자가 처음으로 간 해외여행은 아프리카 르완다였습니다. 2015년 한 달간 그곳을 여행하며 필자의 믿음에 금이 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꿈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노력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라도’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믿어 왔던 가치관이었는데 르완다에서의 한 달 동안 ‘불가능’을 알게 되었습니다.

    르완다 대학의 한 도서관을 종종 다녔는데 유독 그곳의 운영 시간이 독특했습니다. 학생들은 새벽부터 도서관에 나와 공부했고 이른 오후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보다 조금 더 도서관에 남아 있었더니 바로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도서관에는 전기 조명이 없었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통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단골 레스토랑의 웨이터와 이야기하다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웨이터의 고향은 수도인 키갈리에서 한참 먼 시골인데 마실 물을 떠오기 위해 매일 왕복 5시간 거리를 물통을 이고 다닌다고 합니다. 무거운 물통을 이고 매일 왕복 5시간을 걸어야 하는 어린아이는 어떤 꿈을 상상할 수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의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르완다에서의 경험 이후엔 개발도상국의 고질적인 문제와 소셜벤처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에 직접 기여하고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여행을 하며 지금의 고민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하는 여행은 우리에게 책임감을 알려주기도, 가치관을 뒤흔들기도 합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필자 역시 다음 여행을 기약하려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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