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가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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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의 연예쉼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가치 있는 이유

    • 입력 2022.08.24 00:00
    • 수정 2022.08.25 06:55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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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NA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연출 유인식, 극본 문지원, 이하 ‘우영우‘)가 지난 18일 종영했다.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를 보면서 기사를 써왔지만 ‘우영우’ 같은 드라마는 처음 봤다. 6월 29일 첫 회 시청률 0.9%로 시작해 9회 15.8%, 마지막 회(16회) 17.5%까지 치솟았다. 더구나 신생 채널에서 이런 기록을 달성해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1% 돌파면 성공, 3%면 대박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우영우’는 ‘넷플릭스’에도 방송되면서 글로벌 OTT 플랫폼에서 TV 비영어 부문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를 기록하며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KBS 유건식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우영우’를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급이라고 비교하며 PD저널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1991년 신설된 SBS를 4년 만에 기존 KBS와 MBC와 동급으로 만들어 준 ‘모래시계’와 같은 드라마라고 평가받고 있다. ‘모래시계’는 수도권 시청률이 30.7%에서 시작해 64.5%로 끝났다”고 썼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모래시계’ 이전만 해도 SBS 기자들은 각 출입처 기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기존 방송 언론과 출입처 기자들이 신생 방송국이라고 텃세를 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래시계’가 방송되는 시간에는 거리가 한산해서 ‘귀가 시계‘라 불릴 정도였다. ‘모래시계’ 이후부터는 SBS 기자들도 기자실에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우영우’가 ‘모래시계’와 비견된다는 방송 전문가의 분석은 ‘우영우‘가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거뒀는지를 잘 말해준다. ‘우영우’는 1~2회 만에 화제를 집중시켰다. 다른 드라마들은 ‘우영우’의 인기와 화제성에 묻혀 버렸다는 말도 나왔다.

    ‘우영우‘의 메인 축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박은빈)가 법무법인 한바다의 계약직 변호사에서 정규직 변호사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우영우는 재판에서 기존 방식에서의 맹점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시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편견을 깨부수며 민사 재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여기에 회마다 법정 드라마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아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평범한 삼형제의 재산 상속 분쟁과 도로 건립 계획으로 존폐 위기를 맞은 소덕동의 보존 문제, 도로 통행 시 사찰에서 통행세를 받는 것에 대한 분쟁, 심지어 어린이를 각종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한 어른의 재판(어린이해방군 사령관 방구뽕씨 사건) 등을 다뤘다. 일상에서 보고 들어봤던 내용이지만 정확하게는 모르는 이런 이야기를 법정에 올려 디테일하게 전개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 주기도 했다.

    ‘우영우’는 장애인, 동성애자 같은 성 소수자, 탈북민, 가정폭력 피해자로서의 여성, 기업 구조조정 피해자로서의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조명했다. 차별과 공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 가지 정해진 결론이 아닌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방식도 공감을 얻어 웰메이드 휴먼 법정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장르물에는 어울리지 않는 로맨스와 출생의 비밀 같은 한국드라마의 클리셰들이 어김없이 포함돼 있는 등 어색한 부분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영우의 시선이며, 그의 세계의 확장에 박수를 쳐줄 만했다. 그는 자신을 낳았지만 길러주지 않은 엄마 태수미(진경)에게 자신을 “흰고래무리에 속해 함께 사는 길 잃은 외뿔고래”라고 정의하면서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해 감동을 주었다.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는 시청자들이 많았다.

    ‘우영우’는 이런 식이었다. 완벽한 건 없다. 드라마상으로 약점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게 뭔지를 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시청자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일부 시청자들이 “저건 판타지야. (우영우 같은) 저런 자폐인이 어디 있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걸 애써 부정하려고 하기보다는 드라마 내용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 그런 의견들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극복해나갔다. 3화 ‘펭수로 하겠습니다‘ 편을 보면 작가가 자폐인들에 대한 취재를 얼마나 깊이 있게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자폐인은 자폐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로잡아주었다.

    10화 ‘손잡기는 다음에’ 편에는 장애인의 사랑할 권리를 다뤘다. 원고의 어머니가 우영우에게 “지금 감히 누구 앞에서 자폐 타령, 장애 타령합니까. 우리 애 자폐랑 당신 자폐랑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 에피소드는 장애인 여성이 나쁜 남자를 사랑한 권리에 대해 다뤘다. 장애를 항상 피해자,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보면 디테일을 다 놓친다는 발상에서 이런 것까지 말할 수 있었다. 일찍이 이런 드라마가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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