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윤석열, 초심 잃으면 국민 신뢰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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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칼럼] 윤석열, 초심 잃으면 국민 신뢰도 잃는다

    • 입력 2022.03.24 00:01
    • 수정 2022.03.26 00:07
    • 기자명 염성덕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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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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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당선인은 비전과 정견, 다짐과 각오를 담은 ‘당선인사’를 대내외에 공표한다. 대개 대선 결과가 나온 날 발표해 준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분초를 다투는 당선인이지만 핵심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초심이 담긴 당선인사를 보면 당선인의 국정 운영 구상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키워드별로 분류하면 윤석열 당선인은 당선인사에서 국민 36회, 공정 6회, 정의·소통·상식 3회, 정직·법치·통합 2회, 협치를 1회 사용했다. 예상보다 통합과 협치를 적게 언급했다.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통합의 정치’ ‘통합과 번영의 시대’ ‘야당과 협치’로 요약된다. 달랑 세 문장이다. 전체 문맥에서 통합과 협치에 방점이 찍히지 않았다. 세 문장만 보면 윤 당선인의 통합과 협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파악하기 어렵다. 자칫 불통의 길로 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대 대선 결과와 정치 지형을 살펴보면 윤 당선인이 처한 정치 환경과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윤 당선인과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헌정사상 최소인 0.73%p에 불과하다. 두 후보의 표차는 24만7077표로, 무효표 30만7542표보다 적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이런 초박빙 판세는 없었다.

    호사가들은 15대와 20대 대선 결과를 비교한다. 1997년 15대 대선 때 김대중·이회창 후보의 1.53%p 득표율 차이가 깨졌다고 설명한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득표율은 40.27%,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38.74%였다. 두 후보의 표차는 39만557표였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득표율 19.20%를 빼면 15대와 20대 대선의 수치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 보수 세력인 이회창·이인제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57.94%에 달한다. 1~3위 득표율을 계산하면 보수가 진보보다 17.67%p나 득표율이 높다. 윤 당선인은 재임 기간 내내 초박빙인 20대 대선 결과를 곱씹어야 한다.

    지역별 지지도를 보면 윤 당선인은 가시밭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호남의 ‘윤석열 비토 세력’은 너무 견고하다. 윤 당선인은 호남에서 11.44~14.4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 후보는 82.98~86.10%라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국민의힘은 윤 당선인의 호남 지지율이 괜찮았다고 자위한다. 이 후보가 영남에서 선전한 것처럼 윤 당선인이 호남에서 선전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까. 아전인수식의 낙관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권역으로 묶었을 때 유권자가 가장 많은 경기·인천에서도 윤 당선인은 열세를 보였다. 호남과 경기·인천의 유권자를 포용하지 않고는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사이의 오찬 취소나 인사 불협화음, 집무실 용산 이전 갈등은 신·구권력의 1·2·3차 충돌이다. 앞으로 사사건건 부딪치는 N차 격돌의 전조일 수 있다. 의회 권력을 틀어쥔 더불어민주당과 협치하지 못하면 효율적인 국정 운영도 물 건너간다. 윤 당선인은 사력을 다해 통합과 협치의 길로 나서야 한다. 여야를 아우르기 위해 마당발로 뛸 각오와 자세를 갖춰야 한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사에서 국민을 36회나 사용했다. “앞으로도 오직 국민만 믿고 오직 국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오로지 국익만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보수와 진보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입니다. 저 윤석열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국민이 들어간 문장 중에는 공감할 만한 것도 여럿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윤 당선인은 청와대의 용산 이전을 결정하면서 국민적 합의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국민과 소통하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가 집무실 위치 탓에 불거진 것도 아니다. 안보·작전·지휘체계 문제를 도외시한 듯한 일방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민생과 관계없는 이슈가 블랙홀처럼 정국 현안을 빨아들이는 현실도 안타깝다. 윤 당선인은 이전의 대통령들처럼 국민과 지지자를 혼동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그러는 순간 국민은 등을 돌린다.

    어떤 문장에서는 국민·공정·법치를 함께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부정부패는 내 편 네 편 가릴 것 없이 국민 편에서 엄단하고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에 맞선 ‘강골 검사’의 면모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당선인사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고통과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어주십시오.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늘 국민 편에 서겠습니다.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정부, 국민 앞에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국민의 질책도 수용하며, 올곧은 대통령과 정부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펴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는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의 성원과 지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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