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오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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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가 ‘오늘’에게

    • 입력 2021.05.10 00:00
    • 수정 2021.05.12 06:36
    • 기자명 강삼영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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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삼영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
    강삼영 강원도교육청 기획조정관

    지난해 갑작스럽게 개학을 미루고 원격수업을 하면서 교육이 반드시 학교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냐는 도전적인 물음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원격수업이든 등교수업이든 모든 수업은 아이의 배움과 성장을 위한 실천이다. 상황에 맞게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려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 동시에 코로나19가 드러낸 격차와 민낯을 어떻게 줄여나갈지도 고민해야만 한다.

    강원도교육청은 지역교육지원청 17곳과 직속 기관 13곳을 일일이 찾아가서 2021학년도 업무협의를 진행했다. 협의 자리에서 나온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장 선생님들과 교직원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본다.

    ‘자기 주도학습이 가능한 학생들에게는 원격수업의 충격이 크지 않다’, ‘천천히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개인 맞춤형 일대일 교육을 해야 한다’, ‘유치원, 특수학교, 초등 1‧2학년의 원격수업은 고육지책일 뿐이다. 철저한 방역과 등교수업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학력 격차 문제보다 공교육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문화·정서적 격차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 격차 문제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격차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응 방식이 바뀌었다. 주민 직선 교육감 이전 시절을 떠올려보자. 그때만 해도 학교 간 학생 간 격차는 당연하다고 보았다.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을 대놓고 차별했다.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 적어 내걸고 학급과 학교, 지역을 성적으로 줄 세웠다. 교복은 주홍글씨처럼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수많은 능력 가운데 시험 점수만이 능력이라고 보았다. 성적은 학생 개인의 게으름 탓이지 학생을 둘러싼 배경을 원인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바뀐 만큼 교육을 바라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다. 시험 점수가 결코 한 사람의 능력을 온전히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없음은 상식이 됐다. 능력도 습득 과정에서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한층 의미 있게 작용하는 까닭에 한 사람의 노력에만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반성도 커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강원교육은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각기 다양한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 누구나 행복하게 배우면서 진로를 개척하는 교육’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교육부뿐만 아니라 대부분 시·도교육청의 교육지표에 ‘경쟁’ 대신 ‘행복’이 자리한 것은 이러한 지향과 가치가 보편이며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교육이 희망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목소리는 나날이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이 더욱 절실해졌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같은 통계는 우울한 미래를 말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도구들은 인류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사회 틀을 더욱 완고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넘쳐난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더 좋은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을 희망으로 만들어가려는 사람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흔히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은 네 가지 역량(4C)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창의력, 의사소통능력, 협업능력, 비판적 사고력이다. 얼마든지 고개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어떤 수준 이상으로 이 역량들을 키우지 못했다고 ‘실패한 교육’이라고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특수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너나없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네 가지 역량을 키우자면 ‘배움을 즐기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조금 늦더라도 두려움 없이 배우고 평생을 두고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내년 발표할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열쇳말이 두 가지다. ‘학습자 주도성’과 ‘학생 맞춤형 교육’. 주요업무협의에서 아이와 학부모를 날마다 만나는 교직원들이 내놓은 대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고민하고 힘써야 할 길은 뚜렷하다. 제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교육은 본질을 지키는 가운데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현란한 정보통신 기술 적용을 말하기보다 그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배움을 즐길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 경험과 학습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앞 단계에서 생긴 결손으로 아예 배움을 놓아버리지 않게 제때 디딤돌을 놓아주어야 한다.

    유아교육에서는 놀이 중심 교육과정과 유·초 연계 교육으로 아이들이 공평한 출발점에 서도록 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읽기와 쓰기 사칙연산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키워주고, 3학년 과정에서는 영어 알파벳 24글자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공부해야 한다.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 단계에서는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부분(예컨대 분수)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학습코칭(학습방법에 대한 학습)도 전문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고등학교 과정은 사회로 나가는 전 단계다. 취업과 진학에 있어서 일대일 맞춤형 지원이 꼭 필요한 때다. 취업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취업을, 수시로 진학하는 학생에게는 맞춤형 수시 전략을, 그리고 정시로 진학하는 학생에게는 충분한 학습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예·체 동아리를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강원의 모든 아이가 독서동아리와 예체능 동아리에 가입해 자신의 꿈을 찾아가야 한다. 독서 토론을 통해 타인과 공감하고,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가 영어와 생물학에 빠져든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가 일본어를 잘하고, 여행 동아리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만난 지리와 역사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부족한 것은 맞춤형으로 고민하되, 무언가를 일률적으로 주입하거나 압박해서 미래역량을 키운다는 고전적 관념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도 됐다.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이라는 말이 있다. 배움을 즐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아이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행복한 ‘오늘’로 만들 것이다. 그러자면 어른으로서 우리는 배움이 즐거운 행복한 오늘을 만들어가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발목 잡고 길을 가로막는 게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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