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에 닭갈비 냄새가 사라졌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경춘선에 닭갈비 냄새가 사라졌다

    [칼럼] 김성권 콘텐츠뉴스국 부국장

    • 입력 2024.01.25 00:00
    • 기자명 김성권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차 무료로 타시는 나이드신 분들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포항이 더 맛있다더라고요” “볼거리는 없고, 먹거리도 비싼데 오겠어요?”

    얼마전 ‘춘천을 찾는 관광객이 줄고 있다’는 본지 보도에 달린 독자들의 반응이다. 관광을 말하는데 수백개나 달린 댓글에는 닭갈비 얘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놀러와서) “닭갈비도 안 먹고 간다”는 한 상인의 인터뷰에 꽤나 공감이 간 모양이다. 독자들은 양도 줄고, 비싸고, 친절하지도 않다는 말을 이때다 싶듯이 쏟아냈다.

    그런데 이런 혹독한 평가는 춘천을 찾은 관광객이 아닌 춘천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다. “너무 비싸서 춘천사람인 나도 안 사먹는다”는 댓글은 닭갈비의 도시 춘천에게는 뼈아프게 들린다. 사실 가격이 오르고 양이 줄은 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그만큼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닭갈비만 그대로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일치기 여행이나 경유지로 들리는 코스” “항상 똑같고 변한 게 없어서 재방문하기에는 부족해보여요”라는 말은 그만큼 춘천 관광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볼 것도 없는데 그나마 춘천 관광을 지탱하던 닭갈비마저 위태롭다는 의미다.

    ‘춘천 관광’은 닭갈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춘천과 서울을 연결해주는 경춘선 전철은 2010년 개통했을 때 ‘닭갈비철(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철을 타고 올 수 있는 춘천 관광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닭갈비를 먹는 것이 코스였다. 그렇게 관광객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한꺼번에 전철을 타면서 닭갈비 냄새가 진동했고, 이 때문에 ‘닭갈비+전철’이 합쳐져 별명이 생겼다.

    당시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가 되는 ‘경로 승차제도’를 이용해 춘천에 오는 실버 관광객도 많았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서울 상봉역에는 나이가 지긋이 든 등산객이나 나들이객으로 붐볐다. 교통비가 들지 않으니 춘천에 와서 등산도 하고 닭갈비, 막국수까지 먹을 수 있으니 서울 근처에 이만한 매력을 가진 관광지가 또 있을까. 밥값만 들고 나오면 하루 바람쐬기로는 최고의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봉역에서 춘천행 열차를 무료로 타는 어르신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를 만난 것도 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처럼 교통비가 무료라 하더라도 다시 갈만큼 확실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매번 올 때마다 똑같은 패턴” “즐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댓글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관광객들의 춘천 외면은 경춘선만이 아니다. 주말 오전이면 서울에서 춘천으로 오는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춥든 덥든 거의 매번 놀러가는 차량으로 꽉 막힌다. 그런데 이렇게 기나긴 차량 행렬은 가평 쯤에서 끝난다. 가평만 지나면 그렇게 막히던 길이 갑자기 뻥 뚫린다. 춘천으로 오기 전에 가평으로 빠지거나, 아니면 동해안으로 나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바다 보러 놀러 가다가) “닭갈비나 먹고 갈까?” 하는 곳이였지만, 이제는 경유조차 하지 않는 관광지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닭갈비가 춘천 여행의 맛을 잃어가는 동안 주변에선 산천어 축제(화천)가 생기고, 파크골프(화천), 커피의 도시(강릉), 눈축제(태백), 김장축제(평창)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 도시들은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대부분 춘천을 거쳐야 갈 수 있는 지역이다. 이들을 붙잡지 못한다는 건 춘천 관광의 굴욕이 아닐 수 없다.

    춘천 관광의 앞날은 더 험난하다. 교통여건이 더 좋아지고, 해외여행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더이상 오지도 머물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화천 산천어나 강릉 커피처럼 지역의 정통성을 살린 축제가 절실하다.

    남들 다 하는 커피도시축제나 언제 했는지도 모르는 세계불꽃대회처럼 따라하는 행정은 더이상 반복하면 안된다. 태권도대회도 지난해처럼 주먹구구식이면 또 다른 세금 낭비 축제로 전락 할 수 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닭갈비·막국수 축제를 더 키우고 살리든지, 인형극제나 마임축제처럼 춘천 하면 떠오르는 축제를 더 지원하든지, 어쨋든 춘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살려야 한다.

     

    춘천지역 대표 먹거리로 손꼽히는 닭갈비. (사진=MS투데이 DB)
    춘천지역 대표 먹거리로 손꼽히는 닭갈비. (사진=MS투데이 DB)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