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다’는 일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듣는다’는 일

    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 입력 2024.04.18 00:00
    • 기자명 최삼경 작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바램도 많고 아쉬움이 많은 선거였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한편으로 선거를 했나? 언제 했더라? 하는 마음이 든다. 이것은 무엇인가. 의석수에서 별 차이 없는 선거 결과가 그러한지는 몰라도 이럴 거면 왜 그 난리를 치면서 선거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선거판 전체에 활력과 긴장을 불어 넣으며 제3정당으로 도약한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향후 정치 판세에 변화를 불어 넣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새로운 출발선상에서의 우리는 조금 무덤덤한 느낌이다. 이렇게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정치가 희망을 준다는 언설 자체가 이미 난센스가 된 현실이 아닌가. 정치가 국민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의 옥석을 가리고 시대변화에 맞게 정책을 세우고 국민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볼 때 지금 우리 정치의 폐해의 원인은 자명하다. 일단은 정치가 국민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에는 쓸데없는 신변잡기나 뒷 담화 같은 ‘수다’라 불리는 것도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성찰과 아이디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듣는다는 일은 소통의 첫째 조건이 된다. 소통(疏通)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소통의 반댓말은 경색(梗塞)이다. 통하지 못하고 막히기가 가시나무로 요새를 만든 모습을 말한다. 어쩐지 정치판의 누구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듣는다는 것은 경청을 의미한다. 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남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자연 그 입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기울일 경(傾)이 쓰인다. 여기에는 말하는 이에 대한 선입견이나 듣는 내 자신의 기분 따위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이야기도 그나마 왜곡 없이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집값은 오르고. 무엇보다 산다는 일에 희망이 없는 국민의 말을 대하며 정치가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정치가는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여러 가지로 얽힌 정책에 대한 고민과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좋은 정책이나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관료들에게 국민의 세금을 주는 것이다. 그 일을 하지 않고 당리당략이나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저간의 모습이 현재처럼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우리는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을 치루고 아직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단 상황에서 살고 있다. 이는 온전하고 자유로운 의미에서 시민(市民)으로서의 경험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선거는 시민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최대화하는 정치적 장치이므로 선거를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그나마 국민의 가치를 배우는 중이다. 로적성해(露積成海)라는 말이 있다. 이슬을 모아 바다를 이룬다는 것으로 모쪼록 국민의 여러 목소리를 모아 서로가 미워하지 않고 따뜻하게 인사할 수 있는 정치가 되길 바라본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어디 이쪽저쪽을 가려서 햇빛을 보내는가 말이다.

    ■ 최삼경 필진 소개
    -작가, 강원작가회의 회원
    -‘헤이 강원도’,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2,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출간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9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