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과 오마카세에서 결식아동 밥 먹으라니⋯아동급식카드 관리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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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프집과 오마카세에서 결식아동 밥 먹으라니⋯아동급식카드 관리 심각

    춘천 아동급식카드 사용처 4500여곳, 일반음식점 무더기 등록
    호프집, 이자카야 등 부적합 가맹점과 실사용 어려운 점포 다수
    가맹점주 등록 사실 몰라, 시와 카드사는 모니터링 책임 떠넘겨

    • 입력 2024.03.31 00:09
    • 수정 2024.04.02 00:10
    • 기자명 한승미 기자·유지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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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을 위해 지원되는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에 술집과 고가의 일식집 등 부적합한 가맹점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급식카드는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 기준중위소득 52% 이하 가정 등 결식 우려가 있는 18세 미만 아동의 식사를 지원하는 제도다. 춘천에서는 올 3월 기준 1902명이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아동급식카드로 쓸 수 있는 식사비는 동 지역 기준 하루 최대 1만6000원이다. 

    ‘춘천시 아동급식카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준 현재 지역 내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은 4527곳이다. 시의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은 2021년 637곳에서 2022년 4570곳으로 7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일반음식점 약 1480%(255곳→4031곳), 편의점 약 24%(323곳→401곳) 늘었다. 

    시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의 편의점 비율은 2021년 50.7%로 전체 가맹점 대비 절반 이상이었지만 2022년 8.7%로 급감했다.

    아이들의 영양상태 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아동급식카드의 주 사용처가 인스턴트 음식이 많은 편의점에 머물러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우려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편의점을 전체 가맹점 대비 20% 이하로 지정 권고한 내용에도 부합한다. 

    정부 권고안은 맞춰졌지만, 실제 사용에는 큰 변화가 없다. 춘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급식카드는 일반음식점에서 38%가 사용됐지만, 이보다 많은 38.26%가 편의점에서 사용됐다. 가맹점이 7배나 늘고 전체 가맹점 대비 편의점 비율이 줄었음에도 한 끼를 해결할 사용처가 다양화되지 않은 것은 이전과 같은 것이다.

     

    춘천시 아동급식카드 가맹점 수가 2021년 637곳에서 2022년 4570곳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 아동급식카드 가맹점 수가 2021년 637곳에서 2022년 4570곳으로 7배 이상 증가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아이들의 선택권이 확대되지 않은 이유는 가맹점 등록 방식이 ‘신청제’에서 ‘카드사 자동 등록제’로 변경되면서 발생한 문제로 풀이된다.

    춘천시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신한카드를 아동급식카드 수행업체로 선정했다. 기존에는 아동급식카드 가맹점 등록을 원하는 업체가 직접 신청하면 심의를 통해 등록이 이뤄졌지만 카드사에선 자동 등록제로 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점포이면 심의를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가맹점 등록이 이뤄지게 됐다. 

    그 결과 ‘일반음식점’이라도 사실상 술집이나 유사 유흥주점으로 운영돼 미성년자의 출입이 우려되는 가맹점이 다수 등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춘천시 아동급식카드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상호에 ‘맥주·호프’ ‘7080 라이브’ ‘요리주점’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등이 포함된 점포가 다수 발견된다.

    아동급식카드 애플리케이션은 아이들이 실 사용처를 찾기 위해 활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이 같은 유사 유흥주점 노출은 미성년자 교육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부적절하게 사용될 우려도 있다. 

    무분별한 점포 등록으로 실제 카드 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 가맹점들도 눈에 띈다. 한 일식당은 오마카세 전문으로 점심에는 3만5000원, 저녁에는 8만원의 단일 메뉴만 판매한다. 식사가 아닌 주류나 음료를 제외하면 가장 저렴한 음식도 아동급식카드로 먹을 수 없다. 

    업주들조차 본인들의 매장이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교동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우리 가게가 왜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돼 있는지 모르겠다. 술 파는데 애들이 어떻게 올 수 있겠냐”며 “심지어 가게 영업도 오후 6시부터 시작한다”고 당혹스러움을 내비쳤다.

     

    춘천시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된 한 음식점. 음주를 권장하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이곳은 성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포차이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시 아동급식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된 한 음식점. 음주를 권장하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이곳은 성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포차이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지역 아동급식카드에는 연간 약 30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방학 중에는 도비 20%·시비 80%가 투입되며 학기 중에는 도교육청이 전액 부담한다. 사업의 총예산은 △2020년 28억원 △2021년 21억원 △2022년 29억원 △2023년 29억원 수준이며 올해 처음 3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는 아동급식카드의 취지가 훼손되고 지원이 줄어들지 않도록 올해 결식아동 급식 업무 표준 매뉴얼을 개정(신설)해 1회 카드 사용한도를 넘는 음식을 판매하는 고급 음식점과 일반음식점이라도 사실상 술집(주류 및 안주류 위주 판매), 유흥업소로 운영되는 음식점 등은 가맹점에서 제외하고, 자동 등록하는 시군구는 분기별로 자체 점검을 시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춘천시와 신한카드는 여전히 부적합 가맹점 모니터링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가맹점을 모니터링하거나 삭제하는 권한은 지자체에 있고 신한카드는 모니터링 주체가 아니라 지원하는 정도의 수준"이라며 "공식적으로 춘천시와 가맹점 삭제 내역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춘천시 보육아동과 관계자는 "신한카드사에서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어 조회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시는 앱 내 이용자 신고 내역을 삭제하거나 분기별로 부적절한 가맹점을 삭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맹점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일일이 확인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다 거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소극적 대처를 해명했다. 

    한승미 기자·유지연 인턴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재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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