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메타버스′에 540억 베팅⋯도민 혈세 살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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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메타버스′에 540억 베팅⋯도민 혈세 살살 녹는다

    [때 늦은 메타버스] ① 수백억원 사업, 성과는 의문
    강원자치도, '메타버스 거점 도시'에 예산 540억원
    세부 사업 지연되거나 인력 못 구해 중단되기도
    김기홍 도 부의장 "붐 지났는데 호응 얻을지 의문"

    • 입력 2023.09.07 00:03
    • 수정 2024.01.02 09:25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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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버스(Metaverse)는 디지털 가상 공간을 뜻하는 용어로 2021년 IT업계에 본격 등장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메타버스를 미래 신산업으로 육성한다며 개발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유행은 빠르게 식었고, 2년여가 지난 현재 민간 분야에서 메타버스는 AI에 밀려 이미 관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정부와 지차체의 한 템포 늦은 예산 집행은 올해부터 뒤늦게 본격화한다. 강원특별자치도가 메타버스 산업을 육성한다며 쏟아부은 돈과 앞으로 쓸 돈을 합하면 확인된 것만 모두 540억원에 달한다. 인제 와서 강원자치도가 메타버스 분야에서 신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메타버스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반짝 유행에 따라 혈세를 투입하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상명하달식 산업 육성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편집자 주>

    4일 오전 춘천 서면 강원VR·AR제작거점센터(강원VR센터). 센터 앞 주차장엔 2개월 전 마감한 ‘메타버스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공고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3차례 모집기간 연장 끝에 20명 정원 중 끝내 15명밖에 채우지 못했던 교육 프로그램이다. 센터 외벽에는 가로 10m쯤 되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센터가 1100만원을 들여 제작한 센터 홍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건물 안쪽에는 메타버스 체험 시설이 있었으나 4곳을 돌아보는 동안 사용자는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강원자치도는 도를 ‘메타버스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며 총 54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강원VR센터는 그 대표적인 결과물 중 하나로, 2021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구축과 운영에 혈세 90억원을 들였다. VR, AR 기기를 비롯한 장비 72대가 배치돼 있지만 지난 수개월간 기업 몇 곳이 장기 이용하고 있을 뿐, 대부분이 사용자 없이 방치되는 중이다. VR 체험, 학습을 유도한다는 체험관 6곳은 평일 6시간씩 운영하는데 ‘시설 대여 현황’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센터 관리자가 아닌 타인이 시설을 이용한 날은 3일에 불과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메타버스 거점도시 조성’에 사업비 540억원을 편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특별자치도가 ‘메타버스 거점도시 조성’에 사업비 540억원을 편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자치도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 것과 달리 메타버스 산업에 대한 도내 기업체나 일반인의 관심은 저조하다. 올해 ‘메타버스 거점도시’ 사업에 투입된 도 예산은 모두 128억5800만원이다. 지난해와 전임 도지사 시절 사용된 액수까지 합하면 280억원에 달한다. 앞으로 2026년까지 더 사용할 예산은 260억원이 남아 있다. 

    MS투데이 취재 결과 강원자치도의 ‘메타버스 거점도시 조성’ 사업들이 전부 비슷한 상황이었다. 메타버스 거점도시 사업은 △VR·AR 제작거점센터 구축·운영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초광역권 메타버스 허브 구축·운영 △메타버스 융복합 멀티플렉스 조성 △메타버스 융합대학원 설립 등 5개로 구성된다. VR센터 외에도 다른 사업들 대부분이 시민 외면 속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메타버스 관련 사업에 책정된 돈은 일회성으로 무의미하게 지출되는 경우가 많다. 강원VR센터는 지난해 11월 센터 홍보영상 제작을 위해 춘천 민간 업체와 약 1100만원의 수의계약을 맺었다. 이후 결과물이 올해 2월 유튜브 등에 업로드됐지만 3분 분량 영상 두 편의 조회수는 각각 50회 수준에 불과하다. 센터 관계자는 이 영상에 대해 “유튜브만 아니라 진흥원 외부 전광판, 모니터 등 각종 홍보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춘천 서면 강원 VR·AR제작거점센터가 입주한 건물에 설치된 옥외 전광판에서 강원VR센터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4일 오전 춘천 서면 강원 VR·AR제작거점센터가 입주한 건물에 설치된 옥외 전광판에서 센터 홍보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용어 설명

    메타버스(Metaverse):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웹상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는 가상현실 플랫폼.

    VR(Virtual Reality): 가상 현실.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어 낸 가상적인 3차원 공간.

    AR(Augmented Reality): 증강 현실. 현실에 3차원의 가상물체를 띄워서 보여주는 기술.

    메타버스 전문 대학원을 개설해 인재를 양성하겠다던 계획은 시작조차 못했다. 공모를 진행했지만, 도내 대학 한 곳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탓이다. 교수, 신입생 등 메타버스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도가 요구하는 과제를 추진할 여건이 미흡하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대학원 설립 계획은 모두 중단됐다.

    이에 도는 메타버스 아카데미 사업 추진으로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국 대상 300명에게 무료로 메타버스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사업으로 강원권에선 강원디자인진흥원이 운영을 맡아 정원 20명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요가 적어 2~3회 추가 모집을 진행했고, 15명의 교육생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강원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춘천에서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지역이 한정적이었고 오전 오후 내내 수업이 진행돼 학생이나 직장인의 참여가 어려워 대상이 적었다”고 말했다.

    강원자치도가 지원하고 강원테크노파크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눈먼 돈 퍼주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 기업의 메타버스 콘텐츠 기획과 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1억2000만원의 지원금을 걸고 11월 공고를 냈다. 이후 지원 기업을 선정해 사업 종료 후 결과 평가까지 한달여만에 모든 절차가 끝났다. 해당 기업들이 어떤 사업을 벌여 지원을 받았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강원테크노파크는 본지가 이 사업 지원내역을 묻자 ”기업 보안 등의 이유로 공개가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절차가 부실했던 것 아니냐고 묻자 “기한이 연말까지인 사업이 하반기가 돼서야 시작돼 촉박했지만 기한 내 충분히 목표를 완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메타버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올해도 4번의 기업 모집 공고를 냈지만, 아직 지원 기업을 찾지 못했다. 선정 기업엔 올해 말까지 2억45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었다. 강원테크노파크는 기업들이 지역 특화산업과 메타버스를 연계하는 사업 내용을 어려워한다고 판단, 기준을 완화해 다시 공고할 예정이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올해 들어 2분기까지 메타버스 관련 사업에 128억5800만원을 투입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특별자치도는 올해 들어 2분기까지 메타버스 관련 사업에 128억5800만원을 투입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도가 거액을 들여 개발한 가상, 현실 플랫폼들도 잇따라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시민 관심은 저조하다. 메타버스 플랫폼, 가칭 ‘K-강원’에는 2년간 65억원이 투입되며 내년에 열릴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때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달 예정됐던 서비스 개시는 다음 달로 연기됐다. ‘멀티플렉스 체험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강릉시와 함께 사업비 240억원을 투입한다. 메타버스 기술 체험과 유통·소비가 가능한 복합공간을 조성해 지역 상징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올 상반기 실시 설계를 시작해 내년 1월 개관을 목표로 했으나 올림픽 개최 이후인 7월로 연기됐다. 

    김기홍 강원자치도의회 부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메타버스라는 시스템 자체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모습이며 한창 유행하던 시점에서 1~2년이 지나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언젠가 필요할 수 있으니 대비하는 측면에서 지금 사업이 헛되다 할 수는 없지만, 인력 양성 등을 강제로 추진한다고 메타버스가 활성화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2편에서 계속]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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