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감언이설] 페어런츠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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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의 감언이설] 페어런츠 가이드

    • 입력 2023.07.20 00:00
    • 수정 2023.07.26 16:52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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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문화는 사적인 것이다. 그것은 취향에 대한 것이고 감성적인 영역 안에 있으며 개성에 좌우되는 것이다. ‘대중’문화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에 대한 공적인 척도가 있는 건 아니다. 어느 사회든 문화를 한계 안에 가두려는 사회적 잣대, 예를 들면 심의나 법적 제재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사적인 표현 욕구가 억제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반발을 만들어내고, 억압된 에너지는 언젠가는 더 크게 폭발하기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에 시스템이 필요하다면, 문화의 시작은 개인이 지니는 사적이며 소박한 관심사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가 공적 영역을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문화’라는 단어엔 ‘집단’이 향유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의 영역과 만날 때, 문화는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창이 된다. 영화나 드라마는 좋은 예다. 그 서사가 지닌 힘은 많은 영향력을 지닌다. 아쉬운 건 가이드다. 특히 유소년 자녀들을 둔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접하는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부모로서 무방비 상태다. 과연 아이들이 접할 만한 것일까? 유해 요소는 없을까? 혹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함께 이야기할 만한 테마는 없을까?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런 정보는 없다.

    여기서 ‘페어런츠 가이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외국의 영상 문화에선 오래전부터 있었던 페어런츠 가이드는, 영화나 드라마나 게임 등이 선보였을 때 그것이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과 유해 요소를 면밀히 분석해주고 나아가 함께 이야기할 만한 ‘리’를 제시하는 콘텐츠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에 가보면 영화의 폭력성과 잔인함,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중독성 물질에 대한 묘사, 성적인 표현, 욕설의 사용 등을 디테일하게 체크해 점수를 매겨 그 강도를 평가한다. 키스 신이 몇 번 나오며, 어느 정도 노출이 있으며,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있을 때 어느 정도 피가 튀기며, 음주 장면은 몇 번이나 등장하며⋯. 매우 구체적인 항목들이 나열된다. 어떤 사이트에선 팀워크, 희생정신, 정의로움과 용기, 환경적 테마 등 영화가 지닌 미덕들을 평가하며 가족 내에서 함께 토론할 만한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간단한 코멘트 이외엔, 한국에서 페어런츠 가이드 문화는 전무하다.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내진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제안해 본다. ‘문화도시 춘천’에서, 지자체 차원의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오래전부터 영상 산업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던 이곳에서, 작지만 소중한 문화적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시민의 참여와 최소한의 지원만 이뤄진다면, 집단지성의 힘으로 페어런츠 가이드라는 공익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영화제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긴 하지만, 영화제를 마치고나면 춘천영화제 사이트를 통해서라도 작은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 쏟아지는 영상 문화 속에서 부모들이 기댈 작은 언덕을 만들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될 거다. 물론 앞에서 말한 ‘최소한의 지원’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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