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싸움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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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싸움 구경’

    [기자수첩] 최민준 정치행정팀 기자

    • 입력 2023.07.19 00:00
    • 수정 2023.07.20 07:59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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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준 정치행정팀 기자
    최민준 정치행정팀 기자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은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고 했다. 인간 내면의 숨은 본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학창 시절 싸움도 그랬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10대들은 서로 어깨만 부딪혀도 화를 참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에겐 큰 볼거리였다.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면, 얼마 안 걸려 “누구야, 누구야” 하면서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환호성을 지르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관심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적막함과 서먹함만 남은 싸움의 주인공들은 수업이 시작된 교실에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벌게진 얼굴에 가쁜 호흡을 이어갔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들을 의식하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머리에 남은 건 수업 내용이 아니라 싸움 장면과 흥분한 친구의 얼굴뿐이었다. 왠지 모를 불편함도 따라왔다.

    성인이 된 뒤에 주먹다짐을 보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춘천시의회의 최근 모습이 그렇다. 의원들 간의 말다툼,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싸움은 볼 때마다 볼썽사납다.

    춘천시청과 시의회 출입기자로 가장 먼저 보도한 소식은 춘천시의회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피켓’ 논란이었다. 사건은 지난달 춘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도중에 일어났다. 한 의원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라고 적힌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였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의 정쟁거리를 지역 의회까지 끌고 오면 안 된다”고 따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정활동에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받아쳤다.

    급기야 ‘징계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고, 가벼운 말다툼은 싸움으로 커졌다. 징계안이 철회됐다가 재차 회부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고, 전국 뉴스까지 탔다. 한 달 가까이 흘렀지만, 갈등은 그대로다. 교실에서 싸움이 끝나고도 벌게진 얼굴로 씩씩 거리는 학생들의 모습과 똑같다.

    싸움이란 게 그렇듯 시간이 갈수록 논점은 흐려지고 분위기는 더 차가워진다. 각자 ‘민생’을 외치며 상대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간다. 실명을 언급한 거침없는 발언도 쏟아낸다. 사이가 좋지 않아 개원 1주년 기념행사도 제대로 못했다.

    누구 말이 맞든 아니든 지켜보는 시민들은 피곤하다. 한 시민은 “할 일이 태산인데 시민을 위한 일은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자기 정치만 하는 것 아니냐”고 한탄한다. 이제 시작한지 1년이다. 남은 3년을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판인데 언제까지 으르렁거릴 건가.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다툼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21일 열리는 춘천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오염수 피켓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같은 날 제326회 임시회도 개최된다. 피켓 논란 이후 처음으로 의회 전체가 공식 활동에 나서는 날이다. ‘공정과 상식으로 다시 뛰는 춘천시의회’라는 슬로건처럼 하루빨리 싸움을 끝내고 시민들 앞에 다시 서길 기대한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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