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캠프페이지와 춘천: 「한국전쟁과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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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캠프페이지와 춘천: 「한국전쟁과 춘천」

    • 입력 2023.07.13 00:00
    • 수정 2023.07.13 08:37
    • 기자명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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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춘천의 건물은 모두 부서지고 무너져내렸다. 전쟁 시작과 동시에 지켜낸 3일간의 춘천지역 방어는 한국 전쟁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전투였으며, 세계 전쟁사에 있어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역사에 남는 전투였다. 춘천에서의 3일간의 방어는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미군과 UN군이 들어올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는 대한민국을 현재까지 존재하게 하는 교두보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채소 재배를 주로 하던 앞뚜루(전평리)에 활주로가 건설되며 미군이 주둔을 시작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건설 속도는 빨라졌고,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산화한 존 페이지(J.D. Page) 중령의 이름을 취해 1958년 캠프페이지로 명명하며 탄생을 알렸다. 이후 캠프페이지는 미소 냉전의 국제관계 하에서 남북 대립의 중동부 전선을 담당하는 최전방 보루이자 춘천 시민에게는 금단의 땅이었다.

    캠프페이지의 주요 임무는 미 육군 제2사단에 대한 항공 지원으로, 영내에는 독자적 생존 기반 시설은 물론 시내에서 볼 수 없었던 문화, 복지, 교육, 위락 시설이 있었다. 우체국, 이발소, 편의점, 양복점, 버거바, 항공 매표소, 피자 배달, 원격 대학 과정과 통신 프로그램 제공, 치과, 헬스 클리닉, 도서관, 레크리에이션 센터, 수영장, 테니스 코트, 공예품 가게, 커뮤니티 클럽, 테니스장, 농구장, 볼링센터 등의 시설이 있었을 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웠다.

     

    1990년대 춘천고 맞은편 미군부대 담장.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이경애 씨 제공)
    1990년대 춘천고 맞은편 미군부대 담장.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이경애 씨 제공)

    캠프페이지는 줄곧 춘천 사람에게 두 가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거부와 외면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내에서 일하면서 자유롭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러움이 작동했지만, 캠프페이지 주변으로 유흥문화가 확산하는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작동했다. 2005년 캠프페이지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소양동과 근화동, 명동 일원은 미군을 상대로 한 상권이 형성됐는데 외국인 전용 술집, 양복점은 물론 장미촌, 난초촌, 백합촌 등의 기지촌이 들어서 시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춘천 사람들은 캠프페이지를 ‘리틀 아메리카’로 인식했다. ‘리틀 아메리카’의 미군이 보여주는 생활 문화와 미국 문화는 춘천 시민에게는 낯선 문화인 동시에 동경과 향유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양면성을 살필 수 있는 공간이 이른바 ‘양키 시장’이다. 당시 일상에서 즐길 수 없는 양주와 양담배를 만날 수 있었고, 외국 화장품과 커피, 열대 과일, 초콜릿, 껌 등을 접할 수 있었던 유별난 장소였다. 양키 시장은 요선동을 중심으로 1960년대 형성됐다가 화재로 인해 낙원동으로 옮겨졌다. 이후 화재로 중앙시장으로 옮겨갔으며 1960~80년대 호황을 누리다 2005년 캠프페이지 폐쇄와 맞물리며 쇠퇴, 현재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1969년 춘천역 앞 미군부대 철조망 모습.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허일영 씨 제공)
    1969년 춘천역 앞 미군부대 철조망 모습.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허일영 씨 제공)

    1983년 5월 5일 캠프페이지에 중공 민항기가 불시착하는 미증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중공 민항기에 빠르고 적절한 조처와 처리로 훗날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수교로 이어지는 큰 역할을 한 공간이기도 하다. 한편 도심에 위치해 춘천역으로 가려면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과 비행장 소음은 근화동과 소양로 주민에게 막대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주기도 하였다.

    2007년 반환이 시작돼 2017년 춘천시가 소유권을 넘겨받았지만 활용에 관한 종합계획은 오락가락 기구한 처지에 놓인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2020년에는 토양오염 논란이 있었고 2023년까지 문화재 발굴을 유예하면서 2024년에야 종합계획을 세울 수 있는 상황이다. 

    캠프페이지 부지는 춘천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담보한다. 활용계획 여부에 따라 춘천의 변화와 발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고 이는 춘천 미래 발전의 발판이기도 하다. 춘천의 미래를 담아낼 청사진과 후속세대를 위한 미래기회, 시민 참여와 수많은 논의를 통해 담아내야 하지 않을까. 

    ■허준구 필진 소개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춘천시 문화도시 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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