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저임금 못 받아도 신고 못해요” 편의점 알바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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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최저임금 못 받아도 신고 못해요” 편의점 알바의 눈물

    [지방 편의점의 위기] ① 내몰리는 알바생들
    “이 동네는 다 이래” 최저임금 미만 취직해도
    이마저 없으면 생계 막막⋯ 신고도 못해
    최저임금 급등에 일자리 급감 ‘쪼개기 근무’도

    • 입력 2023.06.29 00:04
    • 수정 2024.01.02 09:27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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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해 고용 시장에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춘천과 같은 지방 도시의 편의점 업계는 최저임금이 높아질수록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가 불행해지는 ‘최저임금의 역설’이 극심하다. 청년들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알바)로 내몰리고, 점주들은 최저임금을 맞춰주느라 아르바이트생만도 못한 수입을 얻는 경우가 빈번하다. 편의점 알바와 고용주 양측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최저임금제의 실태를 진단한다. <편집자 주>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왜 일했냐고요? 그 돈이라도 벌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올해 초 생활비가 필요했던 한준호(27)씨는 춘천 효자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근무했다. 편의점 점주 A씨로부터 업무에 관한 설명을 듣던 한씨는 급여를 시간당 8000원씩 주겠다는 얘기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최저임금(시간당 9620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한씨는 채용 공고에 적힌 것과 다르지 않냐며 항의했다. 그가 봤던 해당 편의점의 구직 사이트 공고에는 최저임금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자 A씨로부터 “원래 이 동네는 다 이렇게 준다”며 “매출이 잘 안 나오니 이해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씨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 끝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가 일반적이란 사실을 듣고 다시 충격을 받았다. “일부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편의점은 경쟁이 워낙 치열해 점주와 연이 없으면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라는 말도 들었다. 신고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좁은 동네라 신고했다는 소문이 나면 다른 편의점에도 취업할 수 없을 것”이란 말에 포기해야 했다.

    한씨는 결국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계약서에 서명했고 6개월간 근무했다. 그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일을 그만두거나 신고하지 못한 이유는 학업과 취업 준비를 병행하며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최저임금이 높아진다고 반드시 아르바이트생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지방 도시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처럼 비현실적인 최저임금을 피한 편법 고용이 만연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준수하며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편의점은 소수에 불과하고, 다수가 최저임금 미만 지급, 쪼개기 지급 등 편법을 쓰고 있다. 최저임금을 맞춰주는 점포는 점주 자신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수익만 남기며 위태롭게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시간당 9620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최저임금제는 지방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춘천지역 다수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임금 미만의 불법 고용이나 쪼개기 근로로 내몰리고 있다. 본지가 촬영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사진을 AI로 재구성한 모습. (그래픽=최민준 기자·미드저니) 
    춘천지역 다수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임금 미만의 불법 고용이나 쪼개기 근로로 내몰리고 있다. 본지가 촬영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사진을 AI로 재구성한 모습. (그래픽=최민준 기자·미드저니) 

    춘천에서 대학 생활을 한 조모(23)씨도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편의점에 어쩔 수 없이 일한 경험이 있다. “편의점 사정이 어렵고 어차피 일도 쉽다”는 이유로 근무하는 편의점 점주가 최저임금보다 적은 액수를 지급한 것이다. 조씨는 30분 넘게 최저임금을 두고 점주와 실랑이를 벌였지만,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씨는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에 급여를 명시할 경우 아르바이트가 이를 증빙자료 삼아 편의점을 신고하면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씨는 “불법을 저지르면서 양심의 가책도 없이 대놓고 그런 식으로 얘기했다”며 “지방에서 일할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조씨는 한 달 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최저임금 미만의 시급으로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왜 불법적인 근로 조건을 받아들이는 걸까? 이는 당장 급한 생활비 마련을 위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이상의 일자리는 경쟁이 치열해 구할 수 없는데다, 소문이 나면 인근 편의점 취직도 힘들어질까 불법 고용을 신고하지도 못한다. 고용노동부 강원지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기준 강원지역에서 최저임금 위반으로 근로자가 받지 못한 금액은 모두 6029만210원이었다. 접수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지역 근로자들이 받지 못한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바이트생들의 불만은 단순히 최저임금을 못 받는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급격한 최저임금 탓에 편의점 일자리 자체가 큰 폭으로 줄었다고 본다. 점주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급등으로 인건비가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주고 고용하자니 불법을 저지르는 데 대한 부담이 있다. 이 때문에 2명이 일해야 할 편의점이 1명만 뽑거나 아예 채용을 안 하고 점주 자신이 하루 종일 편의점을 지키는 경우가 생긴다.
     

    강원지역 내 초단시간(15시간 미만) 근로자 비율과 증가율이 모두 전국 평균을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지역 내 초단시간(15시간 미만) 근로자 비율과 증가율이 모두 전국 평균을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많은 청년들이 주당 근로시간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로 내몰리기도 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우리나라는 근로자에게 근로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는 ‘주휴수당’을 주 1회 이상 보장하지만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당 근로시간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고용’이 성행한다. 역시 최저임금 급등의 부작용이다.

    주 15시간 미만 쪼개기 고용은 특히 강원특별자치도를 포함한 지방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강원지역 내 주당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모두 8만6000명으로 지역 전체 근로자(87만8000명)의 9.8%에 달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 16.3% 증가했다. 전체 근로자 대비 초단시간근로자의 비율과 월간 상승률 모두 전국 평균(근로자 비율 5.3%·증가율 4.9%)을 한참 웃돈다.

    점주들이 근무 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나눠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을 택하면서 아르바이트들의 입장은 더 난처해졌다. 춘천 지역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청년은 “최저임금보다 낮더라도 넉넉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선 주 40시간 정도 일해야 하는데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며 “차라리 시간당 7000원만 받더라도 길게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 청년은 주휴수당을 포기하고 주당 14시간씩 여러 편의점을 다니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결국 근로자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급격히 인상한 최저임금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을 실직과 불법 고용, 쪼개기 근로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노동권 관련 활동을 벌이는 나현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미달이나 주휴수당 미가입 형태의 고용 사례가 자주 보고된다”며 “수도권보다 밀집 인구가 적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업종과 지역별 차등 임금제 등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최소한 지금부터라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은 연쇄적으로 전체적인 임금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청년층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은 자제하거나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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