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고 타이레놀? 사치네요”⋯절약 끝판왕 ‘거지방’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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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다고 타이레놀? 사치네요”⋯절약 끝판왕 ‘거지방’이 뜬다

    MZ세대 중심으로 지출 평가하는 오픈 톡방 유행
    서로의 지출 내역 공개하고 절약 팁도 공유
    플렉스 등 각종 사치품 소비 현상과 대조적

    • 입력 2023.04.21 00:01
    • 수정 2023.04.24 00:02
    • 기자명 이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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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거지방에서 한 이용자가 마스카라를 구매하자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20일 거지방에서 한 이용자가 마스카라를 구매하자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고물가에 MZ세대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지출을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인 속칭 ‘거지방’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거지방’이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서로의 소비 생활을 공유하면서 절약을 독려하는 것을 말한다. 참여자들은 이곳에서 한 달 예산을 정해 놓은 후 서로의 소비에 대해 평가하고 절약 팁을 공유한다.   

    기자가 20일 거지방에 참여해 봤다. 한 참여자가 “어지러운데 타이레놀 사 먹는 거 사치겠죠?”라고 물으니 “관자놀이 마사지해주세요, 사치 맞습니다” “어지러우면 다른 곳을 아프게 하는 건 어떠세요?” “대학생이시면 과사에서 약 얻어가고 직장인이시면 회사 상비약을 털어봅시다”등의 재치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비용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이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비용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거지방’ 참가자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지출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참여자가 “컵라면에 삼각김밥은 사치입니다”라고 말하자 이에 동의하는 답변이 우루루 돌아왔다. “둘 중 하나만 먹어도 배는 채워요” “컵라면 하나만 먹고 국물까지 먹으면 배에 딱인데”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어야 배가 차다뇨? 굶어서 위를 줄이세요”라며 절식을 강조하기도 했다.  

    거지방 유행은 소득이 비교적 적은 사회초년생과 대학생들이 이끈다. 과거 MZ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무지출 챌린지’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동안 ‘플렉스(과시형 소비)’ ‘YOLO’ 등의 용어가 유행하며 자유로운 소비가 대폭 늘어났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거지방의 인기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사소한 소비까지 줄여야 하는 MZ세대의 관점이 자조적으로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카카오톡에서 거지방을 검색하자 관련 채팅방 수백개가 나온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카카오톡에서 거지방을 검색하자 관련 채팅방 수백개가 나온다. (사진=카카오톡 갈무리)

    이용자들은 대부분 재미로 참여하지만, 일부는 거지방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한다. 춘천시민 이모(31)씨는 “며칠 전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 거지방에 1350원짜리 과자를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당근마켓에서 싼 것 구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며 “평소 내 소비습관에 대해 돌아보고 절약하는 방법까지 공유하니 정말 유익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청년들이 스스로를 거지라 칭하며 진짜 가난을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누리꾼은 “저소득층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를 줄일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절약이 ‘함께 하는 놀이’가 됐다고 설명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거지방을 통해 절약이라는 힘든 일을 함께 하면서 서로 격려하며 비판도 하는 것”이라며 “고물가로 경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동안 거지방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지 기자 hy0907_@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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