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와 일수사견(一水四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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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진규와 일수사견(一水四見)

    ■ [칼럼] 한승미 문화팀장

    • 입력 2023.04.20 00:00
    • 수정 2023.04.21 06:38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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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 권진규 조각가의 모습. (사진=MS투데이 DB)
    생전 권진규 조각가의 모습. (사진=MS투데이 DB)

    “춘천에 권진규 미술관을 만들자⋯도시의 위상과 미래를 우선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2021년 한 일간지에 이런 내용을 담은 기고가 게재됐다. 권진규미술관이 춘천을 다시 문화도시로 이끌 것이라는 강력한 주장과 함께였다. 권진규는 박수근, 이중섭과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이고 그의 탄생 100주년을 앞둔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은 유려하면서도 단호했다. 

    이듬해 이 기고를 썼던 이는 자신의 주장을 실현할 권한을 갖게 됐다. 육동한 춘천시장의 이야기다. 기고는 육동한 춘천시장이 춘천조각심포지엄 조직위원장을 지내던 때 작성됐다. 그해 춘천조각심포지엄이 권진규를 오마주한다며 ‘원시의 숨결’을 주제로 열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주창했던 권진규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춘천시장에 취임했고 다음 달 권진규 50주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취임 이후 춘천에서는 권진규 조각가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 건립은커녕 그의 작품세계를 기념할 행사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권진규에 대한 육 시장의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육동한 시장은 지난 2월 지역 미술인들이 대거 참석한 한 전시회 단상 위에 섰다. 그는 춘천시립미술관 건립에 대해 언급하며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춘천에 못 모시고 서울로 다 보내드린 권진규 작가도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짧은 언급 앞에 ‘개인적인’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권진규미술관 건립을 위한 논의를 서두르자는 2년 전 강한 어조와 달리, 사견(私見)임을 굳이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일수사견(一水四見)’은 물을 보는 입장에 따라 네 가지로 달리 보인다는 불교 용어다. 천상에서는 보배로, 사람에게는 마시는 물로, 물고기에는 집으로, 아귀에게는 피고름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한 가지 현상을 놓고도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권진규 조각가의 가치가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는 미술 트렌드를 이끄는 BTS RM이 그의 작품을 소장한 것에 이어 작품과 자료가 역대 최대 규모로 전시되는 등 화제의 중심이 됐다. 50주기를 맞는 올해 역시 권진규의 해가 될 것이다. 내달 그의 작업실이 있던 서울 성북구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열리는 50주기 추모 음악회를 시작으로 6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 권진규 상설전시장이 문을 연다. 그의 작품세계를 다룬 TV 프로그램도 이미 방영됐고 그를 소재로 한 영화도 제작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춘천은 고요하다. 과거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은 권진규 작품의 공공자산화를 위한 지역으로 그의 남한 고향인 춘천을 꼽았지만, 춘천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권진규 작품 대거 수증은 미술관장의 강한 의지가 있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장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때다. “도시의 위상과 미래를 우선하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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