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안챙기는 국회의원] ⑧12년 밀어준 접경지 주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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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안챙기는 국회의원] ⑧12년 밀어준 접경지 주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한기호 의원 발의 접경지 지원 5법 국회 계류 중
    철원 군부대 이전에 연간 1100억원 경제 손실 추산
    군부대 이전 접경지 주민 "지역 초토화 지켜만 봐"

    • 입력 2023.02.23 00:03
    • 수정 2024.01.02 13:44
    • 기자명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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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철원군에 위치한 옛 군부대 정문 인근의 모습. 부대 이전 후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다. (사진=특별취재팀)
    강원 철원군에 위치한 옛 군부대 정문 인근의 모습. 부대 이전 후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다. (사진=특별취재팀)

    2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부대라고 적힌 출입문 바로 옆 초소가 텅 비어 있었다. 부대 안쪽으로 무성하게 자란 잡초가 보였다. 일대를 지키던 사단급 부대가 2018년부터 경기 포천시로 이전하면서 이 부대는 지금 터만 남아 있는 상태다. 인근에도 이렇게 떠나간 부대가 있던 자리 두어 곳이 더 남아 있다.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동송 거리는 이날 한낮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매매’ ‘임대’ 안내문이 걸린 상가 건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부대 하나가 통째로 나가면서 군인, 가족, 아이들까지 모두 떠났다. 장사가 안 되니 주민들마저 하나둘씩 떠나가고 상권도 죽어 가고 있다“고 했다.

    ‘국방개혁 2.0’ 군부대 이전에 따라 철원·화천·양구 등 강원 북부 접경지역 경제는 지난 몇년간 황폐화됐다. 이 지역을 지역구로 둔 한기호(춘천·철원·화천·양구 을) 국민의힘 의원은 이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20년 7월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과 ‘군 유휴지 및 군 유휴지 주변지역 발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을 대표발의했다. 법률안에는 국방개혁 2.0에 따른 군부대 이전으로 생존위기에 처한 접경지와 군 유휴지 주민들의 지원 대책과 공동화된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지원 방안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임기 내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한 의원이 21대 국회 들어 대표발의한 법안은 총 46건이다. 이 가운데 통과된 법안은 ‘6·25전쟁 무공훈장 수여’ ‘6·25전쟁 참전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 2건 뿐이다. 한 의원 법안은 군 관련이 총 27건으로 가장 많았고, 접경지와 관련된 법안은 5건이었다. 이밖에 선박 3건, 도로 2건, 수복지 2건, 농지 2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나머지는 군유휴지, 국가보안, 희귀질환, 정당, 선거 관련 법안 각각 1건씩이다. 3건은 대안반영으로 폐기됐다.

     

    강원 철원군 동송읍 거리. 상가건물(왼쪽)에 매매, 임대 안내가 붙어있다. (사진=특별취재팀)
    강원 철원군 동송읍 거리. 상가건물(왼쪽)에 매매, 임대 안내가 붙어있다. (사진=특별취재팀)

    본지가 만난 이 지역 주민들 중 상당수는 한 의원이 접경지 군부대 이전으로 인한 지역 경제 초토화를 눈뜨고 지켜만 봤다고 비판했다. 춘천 뿐만이 아니라 12년을 믿고 뽑아준 철원·화천·양구 지역 주민들도 비슷했다. 양구군에 사는 한 지역 소상공인은 “군 장성 출신이라 누구보다 지역을 잘 대변해줄거라 믿고 뽑았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라고 말했다.

    군부대 현대화와 통폐합을 골자로 하는 ‘국방개혁 2.0’에 따라 2019년 2사단이 해체되면서 5600여명의 군인이 양구를 떠났다. 중요한 소비 주체였던 면회객마저 줄었고,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930억원 규모로 양구군은 추산한다. 양구군의 한 청년은 “접경지 지원 법안도 이번 국회 끝나면 다 폐기되는 거 아니냐. 그러면 다음에 또 공약으로 내세우고, 또 처리 안되다 마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철원에서는 이미 6사단의 포천 이전 작업이 진행 중이며, 2024년까지 마무리될 전망이다. 여기에 3사단마저 경기도로 이전할 경우 연간 1100억원 가량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한다. 화천에서는 27사단이 지난해 15사단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해체됐다.

    군부대 이전은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구상했던 내용이다. 특히 이 기간 한 의원은 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군부대 이전 후 지역구 경제가 위축될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군부대 이전을 막지 못하더라도 유휴지를 활용할 방안 등을 마련할 시간이 있었다. 지역 정계 관계자는 “정부나 기관들과 만나 군 유휴지 활용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게 지역구 의원의 역할인데, 한 의원이 장군 출신이라 고개가 뻣뻣해서 그런 역할을 못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한 의원의 정치 기반인 철원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온다. 김영훈 철원 와수시장번영회 회장은 “군인도 줄고 부대도 이전하면서 재래시장이 다 죽었다. 커피집이나 게임방에서는 군인들을 볼 수 없다. 위수지역도 없어지다보니 먹고 살 여건이 되지 않을 정도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 의원이) 많이 부진하다. 여당 3선 의원에 국방위원장까지 맡고 있는데 우리 지역구나 강원도민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데 희망이 없고 암담하다”고 털어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역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면 표를 통해 심판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면서 “잘못된 선거구 획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유권자가 한 표 행사를 제대로 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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