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현수막’ 합법 틈타 너도나도⋯시민 안전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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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현수막’ 합법 틈타 너도나도⋯시민 안전은 뒷전

    춘천 내 유동 인구 많은 곳 불법 현수막 난립하는 상황
    장학리교차로는 현수막이 운전자·보행자 시야 가리기도
    시 “최근 단속 인원 충원했으며, 불법 현수막 근절하겠다”
    인기 게시대 좋은 자리는 예약하기 하늘의 별 따기 수준
    자영업자 “불경기에 우리만 이용료 내는 것 박탈감 느껴”

    • 입력 2023.02.15 00:02
    • 수정 2023.02.16 06:48
    • 기자명 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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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장학교차로 인근에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정치인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다. (사진=서충식 기자)
    14일 장학교차로 인근에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정치인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다. (사진=서충식 기자)

    최근 춘천에서 지정된 게시대 외의 장소에 무분별하게 불법 현수막이 내걸리고 있어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최근 옥외광고물법 개정을 통해 정치인은 현수막을 허가 없이 어디에나 게시할 수 있도록 법이 완화되면서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는 지적이다.

    ▶시야 가리는 불법 현수막

    14일 장학교차로에는 가로수와 가로등 사이에 걸린 수강생 모집, 행사 개최 등을 알리는 불법 현수막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설날 명절 인사 현수막도 있는 것을 보면 최소 보름 이상은 단속 없이 방치돼있던 것들이다. 지정된 게시대 이외 장소에 현수막을 설치하면 위법이다. 이를 어길 시 강제 철거와 함께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같은 날 남춘천역 앞 도로변에도 지정된 게시대가 아닌 곳에 7개의 불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는 심지어 춘천시 산하 춘천시도시재생지원센터의 행사 안내 현수막도 있었다. 이외에도 호반사거리, 팔호광장교차로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 대부분이 불법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4일 장학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이 불법 현수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사진=서충식 기자)
    14일 장학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차량이 불법 현수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사진=서충식 기자)

    불법 현수막은 도시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안전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장학교차로에는 낮게 매달린 불법 현수막으로 인해 보행자의 시야에 우회전하는 차량이 가려졌다. 운전자도 건널목으로 오는 보행자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교차로 인근에는 중·고교와 대학이 있어 학생들의 이동이 많아 안전 사고 우려가 높다. 

    한림성심대 재학생 강정훈씨는 “불법 현수막에 시야가 가려지는 문제는 어두워졌을 때 심각해진다”며 “보행자는 전조등 불빛으로 인해 그나마 차가 오는 걸 알아채기 쉽지만, 운전자는 보행자가 아예 안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키가 작아 시야가 낮거나, 자전거 혹은 전동킥보드 등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학생들은 위험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14일 남춘천역 앞에 현수막들이 내걸려있다. 지정된 게시대 이외의 현수막은 모두 철거 및 과태료 대상이다. (사진=서충식 기자)
    14일 남춘천역 앞에 현수막들이 내걸려있다. 지정된 게시대 이외의 현수막은 모두 철거 및 과태료 대상이다. (사진=서충식 기자)

    춘천시는 겨울철 한시적으로 인원이 부족해 단속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시는 겨울에 직원 3명으로만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고 있어 국민신문고 민원처리 위주로 단속을 펼쳤다. 민원처리는 정해진 기한이 있기에 해당 건을 먼저 처리해야 했고, 그 건수가 많아 민원처리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는 입장이다.

    이남호 춘천시 건축과장은 “이달 7일부터는 불법유동광고물(현수막 포함) 단속업무를 기존 직원 3명에 희망일자리근로자 6명이 합류해 처리하고 있다”며 “밀린 민원처리를 모두 마친 후 2월 중순부터는 단속반 인원 9명을 2개의 팀으로 나눈 뒤 정해진 15개 구간에 대해 단속을 펼쳐 불법 현수막 처리 공백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에 한 아파트 분양 광고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게시돼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고, 계속해서 법을 어기면 1차, 2차, 3차로 가중 부과하고 있다”며 “다만 분양 광고 홍보 업체에서는 과태료를 낼 각오를 하고 그 비용까지 포함해 홍보비를 책정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우리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다.

    ▶특혜 논란 ‘정치인 현수막’도 한몫

    최근엔 정치인 현수막이 우후죽순 늘어나며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지정된 게시대 이외에 설치하면 불법으로 간주해 철거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제한이 정당 홍보 활동을 지나치게 막는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당 대표, 당협위원장 등 일부 정치인은 정당의 정책이나 현안을 담은 광고물을 허가나 신고 없이 게시대 이외 장소에 설치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정당 명칭과 연락처, 설치업체의 연락처, 게재 기간을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정치인 현수막이 합법화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특혜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진=서충식 기자)
    지난해 12월 정치인 현수막이 합법화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특혜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사진=서충식 기자)

    이에 대해 시민과 자영업자들은 과도한 특혜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현재 춘천에는 총 128개의 현수막 게시대가 있다. 1만1000원~1만4000원의 금액을 내면 7일간 1개 면에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게시대 가운데에서도 공지천사거리, 장학교차로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다음 달까지 예약이 모두 찬 상태다. 강원도옥외광고협회 춘천시지회에서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다음 달 게시대에 내걸 현수막을 예약받고 있는데, 인기가 많은 가장 상단 면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할 정도다.

    거두리에 있는 현수막 게시대를 자주 이용한다는 자영업자 김모씨는 “불경기에도 우리는 돈을 내면서도 시간과 장소를 제약받고 있는데, 정치인은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현수막을 걸고 싶어도 자리가 나지 않아 못 거는 사람이 줄을 선 상황에서 누가 게시대에 걸고 싶어하겠느냐”고 말했다.

    [서충식 기자 seo90@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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