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이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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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이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 입력 2022.04.03 00:00
    • 수정 2022.04.03 12:18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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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3월 29일 김유정 선생 85주기 추모식이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춘천에서 활동하는 신대엽 화가와 우리 김유정문학촌의 기획홍보팀이 김유정문학촌 개관 20주년에 맞추어 1년 가까이 머리를 맞대고 기획하고 의논한 ‘김유정의 사람들’이라는 회화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가로 240㎝ 세로 200㎝의 대작입니다. 작품 크기만 큰 게 아니라 제목 그대로 한 작품 안에 김유정 선생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16인의 모습을 함께 담았습니다.

    우선 김유정 선생이 속했던 ‘구인회’ 멤버를 들 수 있겠지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이분들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김기림 이효석 이종명 김유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정지용 이무영 등 9명이 창립회원이었습니다. 구인회라는 이름도 회원의 수가 9명이기 때문입니다. 창립 후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 김유정 김환태가 새 회원이 됐고, 전원파 시인으로 불리는 김상용도 나중에 구인회 회원이 됐습니다.

    이들 구인회 멤버에 김유정이 애절한 마음으로 사랑했던 명창 박녹주와 박봉자, 두 여인의 모습도 그림 속에 포함하고, 또 김유정이 문단에서 교류하였던 사람들을 포함시켜 ‘김유정의 사람들’이라는 대작을 만들었습니다. 전체 작품으로 보면 한 장의 그림이지만 거기에 포함된 사람들의 한 분 한 분 초상화를 다시 그 그림을 통해서 만들어냈습니다. 애초의 그림은 한 장이지만 김유정 선생 외에 16명의 초상화를 함께 작업하는 효과를 얻어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습니다. 우선 전원적 삶을 찬미하며 나와 자연의 화해를 그린 김상용 시인에 대해서입니다. 이분이 쓴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행갈이를 하지 않고 문장을 연이어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자연 속에 묻혀 살면서 그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경지를 보여줍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미군정청에서 이분을 강원도지사로 임명했으나 가히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쓴 전원파 시인답게 며칠 만에 곧 사임하고 맙니다. 해방 직후 첫 임명을 받았지만 역대로 치면 제2대 강원도지사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에 앞서 일제강점기 기간 총독부에서 임명한 도지사가 해방 후에도 한 달가량 도지사직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교과서에 실리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지만, 1951년 전쟁 중에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중 식중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분 말고도 구인회 멤버들의 인생이 참 기구합니다. 김유정 선생은 1908년에 태어나 스물아홉 살인 1037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한 사람 폐결핵 환자가 있습니다. 김유정 선생보다 두 살 어리지만, 두 사람이 문학적으로 교감하고 서로를 문학적 연인처럼 가까이 여겨 병든 몸으로 김유정을 찾아와 동반 자살을 제의했던 이상 시인도 같은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보다 조금 더 살았지만 구인회 멤버였던 이효석과 구인회는 아니지만 김유정의 죽음을 애도하며 ‘밥이 사람을 먹다’는 글로 문인의 궁핍함을 한탄했던 채만식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9인회 멤버들뿐 아니라 ‘김유정의 사람들’ 그림 속에 나오는, 김유정 선생과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의 자료를 찾아보면 역시나 기구한 분들이 많습니다. 자료에 태어난 해는 숫자가 쓰여 있는데, 돌아가신 해는 ‘미상’으로 표시되거나 물음표(?)가 찍혀 있는 분들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로 김유정이 남긴 미발표 원고를 가져간 안회남도 그렇고 정지용 현덕 김기림 이태준 박팔양 이석훈 모두 세상을 떠난 해를 모르는 물음표의 문인이 됐습니다. 해방공간에 혹은 6·25전쟁 때 북쪽으로 간 문인들 가운데 돌아가신 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인물은 김유정의 휘문고보 선생이었던 홍명희와 같은 구인회 멤버 박태원뿐입니다.

    올해 김유정문학촌은 김유정 친구 문인들의 해방 이후 혹은 6·25전쟁 이후 활동상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대체 이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선생님은 아시나요? 하고 김유정문학촌 생가 마당에 동상으로 서 계시는 선생님께 물어도 대답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보고 찾아서 알려달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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