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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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봄봄

    • 입력 2022.03.30 00:00
    • 수정 2022.03.30 04:12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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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봄
                                          
     
                                                          금시아

    다행이다
    벚꽃은 그녀를 기다려 주기나 한 듯
    꽃잎을 날리며 반긴다
     
    하회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하시던 어머니
    한여름이어서 안 되고
    한겨울이어서 안 된다고 한 게 언제인지
     
    참 좋구나
    벚꽃 길 꽃눈 맞으며 휠체어에 앉은 그녀
    눈에 매달린 마음이 지친 몸속에서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린다
    고목에도 고가에도 그녀의 숨결이 날아가 앉는다
     
    턱 높은 정지의 무쇠 솥에 묻은 꿈을 만지작거리고
    담장아래 새싹 따라 그녀의 설렘도 연둣빛으로 피어난다
    아버지 따라 시작하던 아득한 신혼길
    팔대 독자 남편의 사랑과 시집살이의 한
    그녀의 입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부챗살처럼 퍼지는 햇살 아래
    하회탈처럼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금시아: 2014년 『시와표현』 등단. 제3회 여성조선문학상 대상. 제17회 김유정기억하기공모전 대상.
    *시집 「툭, 의 녹취록」, 「입술을 줍다」 등.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봄봄」, 춘천이 낳은 소설가 김유정의 작품 제목이다. 어제 3월 29일은 김유정 탄신 85주기였다. 김유정은 갔어도 그의 작품은 이렇게 남아 그의 영혼이 살아나고 있다.

    이 시는 2010년 제17회 김유정기억하기전국공모전에서 ‘대상’으로 당선된 작품이다. 이 시의 작자는 동백꽃과 벚꽃이 피는 봄날, 김유정의 소설 「봄봄」을 소재로 하여 “하회마을에 한 번 가 보고 싶구나 하시던 어머니”의 말을 환유한다. 연상 작용의 알레고리다. 

    “한여름이라 안 되고/한겨울이라 안 되고” 미루고 미루다가 “벚꽃 길 꽃눈 맞으며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란다. 어머니는 아마 휠체어를 탄 채 꽃구경을 가셨나 보다. 찡한 울림이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마음은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린다”. 반짝거림의 뒤편에는 “아득한 신혼길”이 오버랩된다. “턱 높은 정지의 무쇠 솥에 묻은 꿈을 만지작거리던” 삶이 있었고 “팔대 독자 남편의 사랑과 시집살이의 한”도 있었다. 그러나 봄봄! 이 봄날에 어머니의 한은 “그녀의 입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라고 환상적 이미지로 승화시킨다.

    정말 환한 봄이다. 나비 날개 같은 희망의 봄날이다. “부챗살처럼 퍼지는 햇살 아래/하회탈처럼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봄날이다. 코로나19로 3년째 지쳐 있는 우리들에게도 실레마을 김유정의 영혼 같은 동백꽃 길을, 벚꽃 길을 찾아가는 어머니의 봄날 같은, 환한 봄날이 하루빨리 피어나기를 목마른 아이처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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