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정통사극 저력 보여주는 KBS ‘태종 이방원’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서병기의 연예쉼터] 정통사극 저력 보여주는 KBS ‘태종 이방원’

    • 입력 2022.03.23 00:00
    • 수정 2022.03.23 09:01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KBS1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은 이성계(김영철)의 낙마 촬영을 찍기 위해 말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장면으로 인해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이며 한때 폐지 청원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열을 정비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역시 정통사극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극이 상상력이 강조되는 퓨전 사극류가 많아지면서 국민의 역사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대하 정통사극의 중요성이 강조돼왔다.

    그래서 공영방송인 KBS에서 방송 중인 ‘태종 이방원’의 존재감이 더욱 커 보인다. ‘태종 이방원’이 기존 사극에서의 이방원과 다른 점은 욕망을 드러내고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으로서의 약점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방원이 나오는 기존 사극이 영웅 서사류가 많았다면 ‘태종 이방원’은 인간으로서의 이방원(주상욱)을 담기에는 ‘피의 숙청’을 단행하면서도 고뇌와 갈등들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승과 형제, 가족까지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리얼하게 잘 드러난다.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배반하고 형제를 죽이는 야수나 짐승의 모습을 보인다. 이방원은 “나는 이제 괴물이다”는 대사까지 한다. 하지만 사적인 관계를 포기한 채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면 국가를 공적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한다. 그래서인지 태종 이방원은 이례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셋째 아들 충녕(세종)에게 양위를 한다. 18년 재위 끝에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다. 충녕에게 “너가 정말 잘해야 돼”라고 말하면서.

    ‘태종 이방원’이 조선 개국을 다룬 기존 사극과 다른 또 하나는 이방원의 아내이자 원경왕후가 되는 민씨(박진희)의 역할이다. 태종이 첫째 아들 양녕이 아닌 셋째 아들 충녕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둘 사이 성격이나 능력 등의 차이 때문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조금 더 다각적이다. 아직 이야기가 여기까지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보다 입체적인 전사(前史)를 그려내고 있다.

    ‘태종 이방원’은 ‘용의 눈물’ 등 그 어떤 사극보다 태조 이성계(김영철)의 계비 신정왕후 강씨(예지원)와 이방원의 아내 민씨의 역할을 도드라지게 묘사하고 있다. 남편이 힘들어할 때 위로와 함께 결단과 조언, 처방(솔루션)을 내려주는 멘토 역할을 하는 걸 크러시가 강조되고 있다. 두 여성은 잠자리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바를 속살거리며 청하는 베갯머리송사 수준이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는 유능한 참모다. 이성계는 강씨의 죽음 이후 힘이 더욱 빠지고 있다.

    이방원은 조선 2대왕 정조 이방과(김명수)의 세자가 되며 완전히 권력을 잡았다. 실제로는 세제(世弟)가 되어야 하지만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형(정조)에게 양자로 들어가 세자(世子)가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방원과 민씨는 동지였다.

     

    하지만 서서히 균열이 생겼다. 사병혁파가 계기였다. 이방원은 민씨 집안 사병까지도 해체시켜 정부군인 삼군부 산하로 들어오게 하려 했지만 외척 세력인 민씨 일가의 생각은 달랐다. 민씨는 “왕을 만든 게 바로 접니다. 혼자 갖겠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이 조선의 절반은 제 겁니다”라고 남편에게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방원은 “왕은 접니다”라며 민씨에게 일침을 가했다.

    민씨는 정치에 관여하려고 했다. 아버지 민제(김규철)와 동생인 민무구·민무질을 앞세워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남편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 후 민씨는 첫째 아들 양녕을 내세워 못다 한 꿈을 펼치려 했다. 어릴 때부터 외갓집에서 자란 양녕은 전주 이씨지만 여흥 민씨나 다름없었다. 흔히 세자였던 양녕은 자유분방한 한량 기질로 비행과 방탕한 생활을 일삼아 세자가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충녕으로 교체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방원과 민씨의 권력 다툼도 작용한 것이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