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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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 입력 2021.08.09 00:00
    • 수정 2021.08.10 17:11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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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얼마 전 어느 TV 탤런트의 ‘임신 스캔들’이 작은 화제가 되었죠. 사귀던 여성이 임신하자 낙태를 강요했다는 이유로 피소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눈길을 끈 것은 그가 70대 후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젊은 노인’이 늘어난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할까요?

    그래서 이번엔 노인 문제를 다룬 제법 진지한 책을 골랐습니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카밀라 카벤디시 지음, 시크릿하우스)입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은 희한한 재판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2018년 네덜란드에서 69세의 에밀 레이틀밴드란 이가 자신의 출생일인 1949년 3월 11일을 1969년 3월 11일로, 그러니까 20년 늦춰 달라는 청구를 했습니다. 자신의 공식적인 달력 나이는 신체적 나이를 반영하지 못해 구직이나 온라인상에서의 연애 등을 방해한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그 근거로 의사가 자신의 신체적 나이를 49세라 했다며 ‘나이’는 건강과 감정 상태를 반영해 가변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죠. 심지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생일을 늦춘다고 해서 화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든가 노령연금에 대한 권리도 포기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책에는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이런 시도를 하고 싶은, 나이의 무게에 짓눌려 본의 아니게 은퇴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반면 높은 취업 장벽을 극복하는 데는 ‘꼰대’들이 하루빨리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믿는 젊은이들도 많겠죠.

    삶의 연장이 아니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한 지은이는 노령화 현상을 짚고,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 차원에서 해볼 만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 중 하나가 ‘삶이 마라톤이라면 전력 질주하라’는 운동 권유입니다. 지은이는 영국의 82세 장거리 사이클리스트 라자루스를 인용해 “운동이 알약이었다면 모두 그것을 복용했을 거예요”라며 운동 찬가를 펼칩니다. 규칙적으로 1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린다는 라자루스와 그의 친구들은 20대와 비슷한 면역 체계, 근육량, 콜레스테롤 수준을 보인답니다.

    그리스의 이카리아 섬은 주민 3명 중 한 명이 90대까지 살고 치매 걸린 노인은 찾아보기 힘든 장수 ‘블루존’이랍니다. 비결은 주민들의 식물성 식단과 ‘강제적’ 운동에서 찾습니다. 주민들은 하루에 스무 개 이상의 언덕을 걷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을 만큼 야외생활이 필수라거든요.

    일본의 ‘블루존’이란 오키나와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100세가 넘은 여성들이 증손주를 돌보고 외로워하는 이가 거의 없는 축복받은, 섬의 비결은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모아이’라는 친지들 간의 공동망 지원,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좌식 생활에서 얻는 운동량이랍니다. 여기에 ‘자신이 즐기는 일과 자신이 잘하는 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찾고, 80%의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만 먹는 ‘하라 하치부(8부 능선까지만 채운 배’란 식습관이 주효했다지요.

    물론 노령화 대책은 개인들만이 나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은이는 다양한 제도적 개선책을 제시하는데 ‘모든 사람에게 더 오래 일하라고 하는 것은 공평한가’하는 문제를 제시합니다.

    1960년 출생자 중 소득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평생 연금을 세후 13만 달러나 더 받을 것이란 미국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이런 불합리를 구제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생계를 유지할 만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 실패할 수밖에 없고 “걱정하지 마세요. 일하지 않도록 돈을 줄게요”라는 것은 저주나 다름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보다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도록 독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교육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 책이 빛나는데 지극히 당연한 ‘공자 말씀’만 하는 게 아니라 전 국민에게 교육보조금을 지급하는 싱가포르의 ‘기술 미래 프로그램’이란 실제 사례를 소개하는 덕분입니다. 그러면서 “정신을 초롱초롱하게 만든다면 90세 노인을 위한 꽃꽂이 보조금도 고려할 수 있다”는 싱가포르 정치인의 말을 소개합니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읽는 맛을 놓치지 않은 이 책은, 이르든 늦든 노인이 될 모두가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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