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의 ‘거리감’ 아름다운 자연에 시처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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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의 ‘거리감’ 아름다운 자연에 시처럼 담다

    박근영 감독 신작 ‘정말 먼 곳’
    강원도 춘천·화천서 촬영
    ‘소수’에 대한 편견 담담히 풀어
    전주국제영화제 등서 호평

    • 입력 2021.03.26 00:01
    • 수정 2021.05.12 14:32
    • 기자명 신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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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정말 먼 곳’ 출연 배우들의 모습. 뒷 배경은 해피초원목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춘천호.
    영화 ‘정말 먼 곳’ 출연 배우들의 모습. 뒷 배경은 해피초원목장에서 내려다보이는 춘천호.

    “서울과 멀지 않은 춘천과 화천, 이곳들의 아름다움과 풍광이 저에게 아이러니하게 다가왔어요. 이후 ‘거리감’이라는 테마로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거리들을 작품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영화 ‘한강에게’로 제18회 전북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연출 실력을 인정받은 박근영 감독이 신작 ‘정말 먼 곳’으로 돌아왔다. 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고 강원 로케이션 촬영으로 제작된 영화는 춘천 해피초원목장, 화천 파로호, 화천성당 등에서 촬영됐다. 제작은 춘천 애막골에서 함께 자란 동갑내기 친구인 장우진, 김대환 감독이 만든 도내 제작사인 봄내필름에서 맡았다.

    영화 ‘정말 먼 곳’은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이라는 동명 시를 바탕으로 했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와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24회 탈린블랙나이츠영화제 등의 초청을 받으며 호평을 받았다.

    개봉 당일인 지난 18일에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한인가족의 정착기를 그린 ‘미나리’를 제치고 독립·예술영화 좌석판매율 1위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감독과 배우들은 공식 행사를 진행해오며 관객과 더욱 가깝게 소통하고 있다.

    ‘정말 먼 곳’은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은 진우에게 뜻하지 않은 방문자가 도착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하는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성소수자인 진우(강길우 분)는 서울에서 느끼는 따가운 시선과 차별에 지쳐 화천으로 내려와 양떼목장을 운영하며 치매 노모를 모시는 중만(기주봉 분)과 그의 딸 문경(기도영 분)이 살고 있는 집에서 조카 설(김시하 분)과 한 지붕을 이루며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진우는 화천으로 내려온 오랜 연인이자 시인인 현민(홍경 분)과 설의 생모인 쌍둥이 동생 은영(이상희 분)으로 인해 일상에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중만과 문경은 둘의 사이가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내색 없이 평소와 같이 그들을 대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한 것들을 누릴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워하던 진우는 결국 평온했던 일상과 사랑을 저멀리로 떠나보내게 된다.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거리들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는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평소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누구나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주인공 진우에게는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정말 먼 곳’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지난 22일 열린 영화 ‘정말 먼 곳’ 시사회에서 배우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초롱 기자)
    지난 22일 열린 영화 ‘정말 먼 곳’ 시사회에서 배우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신초롱 기자)

    지난 22일 롯데시네마 춘천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기도영 배우는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정말 먼 곳’이라는 제목이 문경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현재를 배제하게 되지만 오히려 360도 돌아와 지금 있는 곳이 가장 먼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재에 집중하고 아끼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정말 먼 곳에 닿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이상희 배우는 “한결같이 너무 아픈 장면이 현민과 진우가 차 안에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진우가 울부짖는 그 장면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며 “은영의 입을 통해 진우의 삶이 큰 변화를 맞게 되는데 진우를 저렇게까지 만드는 시선들이나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속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민도 그런 진우의 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고 있지만 진우의 대답을 듣고 마음 아파하는 현민의 모습들에 마음이 쓰였다”고 덧붙였다.

    박근영 감독은 우리 사회에서 다루기 민감한 주제를 선택한 이유와 결말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현실이, 혹은 사회가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좌절이나 절망을 갖게 되면서 삶을 흘려보내지 않나. 그러는 와중에도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힘은 어떤 순간에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영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어떤 영화를 만들던 이 같은 고민을 해나갈 것 같다”고 답했다.

    [신초롱 기자 rong@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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