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병의 교육산책] 대화가 실종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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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병의 교육산책] 대화가 실종된 교육

    • 입력 2024.04.10 00:00
    • 수정 2024.04.16 00:05
    • 기자명 박주병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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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병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박주병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디알렉티케’(dialectike)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철인군주가 되는 마지막 관문이자 최고 수준의 교과목이다. 우리말로 ‘변증법’으로 번역하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dialogue나 conversation,  즉 대화의 기술이었다. 국가를 다스리는 철인군주가 배워야 할 마지막 과목이 대화의 원리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인접한 국가로서 미케네 문명을 이끈 대표적 폴리스였지만 교육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다. 스파르타식 훈련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스파르타에서는 아이들을 오로지 강인한 전사로 키우는 데 집중했다. 태어나자마자 우생학적인 선별을 거친 아이만 남기고 모두 아포테타이라는 산기슭에 버렸다. 다섯 살이 되면 가정을 떠나 야영생활을 하며 오로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한 훈련만을 받았다. 이런 훈련에 왕족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심지어 「플라타코스 영웅전」에는 훈련받는 아이들에게‘먹을 것을 적게 주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기술되어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살이 찌지 않아야 전투에 민첩하게 임할 수 있었고, 둘째,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영리하고 대담한 방법’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방법은 도둑질이었다.

    그에 비해서 아테네에서는 자연과학과 인문학 중심의 자유교과(liberal arts)를 가르쳤으며, 체육마저도 건강과 심미적 목적을 우선하여 가르쳤다. 아테네의 자유교과는 중세의 대학이 설립될 때 7자유교과라는 이름의 기본 과목으로 자리 잡는다. 산술(대수)·기하·화성·천문학으로 이루어진 4과(quadrivium)와 문법·수사법·변증법으로 이루어진 3학(trivium)이 그것이다.

    4과는 모두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의 법칙들을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교과들이다. 산술은 세계를 수와 양의 법칙으로, 기하는 공간의 법칙으로, 화성은 소리운동의 법칙으로, 그리고 천문학은 물체운동의 법칙으로 이해하는 교과들이다. 오늘날 수포자가 늘고 이공계가 홀대받고 있다고 하지만, 아테네 사람들이 보기에, 수학과 과학은 우리 자녀가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필수 교과들이었다. 우리가 다스려야 할 세계가, 수와 양으로 이해되는 세계, 공간 위에 성립하는 세계, 변화와 운동이 핵심인 세계인 한, 이 세계의 법칙을 모르고서는 세계를 통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학은 우리 자신 내면의 법칙이다. 문법은 사고(생각)의 규칙이다. 어떤 생각이든지 말이 되고 의미가 통하려면 문법적 규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 수사법은 표현의 규칙이다. 지도자라면 명확하고 올바른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 생각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가 배워야 할 교과에는, 오해의 소지없이 명확하면서도 울림이 있게 전달하는 표현의 규칙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변증법. 서두에서 말했듯이 변증법은 철인군주의 가장 최종 관문이었다. 그것은 대화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으로 잘 알려진 정-반-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테네 사람들이 보기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 이면에는 반대편이 존재하고, 성숙한 사람은 정과 반을 자신 안에서 종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꾸로 대화의 능력이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똑같은 상태,‘유치한’상태이다. 그래서 변증법은, 별도의 교과가 아니라, 모든 교과들이 지향해야 할 이상, 또는 교육받은 사람이 마땅히 갖추게 되는 삶의 자세를 가리킨다. 플라톤은 변증법을 일러 “영혼이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고 표현하면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논박술(엘렌코스)과 구분했고, 현대 철학자 오우크쇼트는 대화야말로 문명인에게 어울리는 기술이라면서“타인 존중과 겸손의 연습”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어떤 사람을 기르려고 하는가? 물론 스파르타도 아테네도 모두 자녀들을 세상의 지도자를 기르고자 했다. 다만 스파르타는 오직 힘으로만 세상을 굴복시키는 지도자를 목표로 했다면, 아테네는 이성의 법칙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능력을 통해 본인도 성장하는 지도자를 목표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전쟁은 평화를 위하고 노동은 여가를 위한”그런 교육이었다. 역사가 가르쳐주듯, 스파르타의 교육은 오백 년을 못버티고 사라졌지만, 아테네 교과들은 지금도 세계 어느 학교에서든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어느 쪽 길을 가고 있는가?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은 아테네와 비슷해 보이는데, 어째서 대화는 사라지고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일이 더 많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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