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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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의 시간

    김형석의 감언이설

    • 입력 2024.04.04 00:00
    • 수정 2024.04.05 16:36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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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매년 4월이 되면 우린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오전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간은 멈췄다. 일이 손에 안 잡히지 않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뉴스만 바라봤다. 어떻게든 구조될 거야... 그러나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304명의 희생자들. 특히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의 죽음은 거대한 충격이었다. 왜 우린 그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을까. 지금까지도 답을 구하지 못한 질문이다.

    10년이 지났다. ‘벌써’라는 표현을 쓰기가 미안하다. 아무것도 밝혀지지도, 해결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들은 추모할 뿐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없게도, 아이를 잃은 유족들은 죄인이 되어 버렸다.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 ‘세월호’를 금기어처럼 취급하기 시작했고, 2022년 10월의 이태원 참사도 그 맥락 위에 있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그랬듯, 이태원에서 가족과 자녀와 지인을 잃고 슬퍼하며 울부짖는 자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했는가. 159명의 죽음에 대해서 여전히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잊혀질 순 없다. 이럴 때 영화는, 특히 자본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독립영화는 가장 유용한 매체가 된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해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개봉되었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과 <바람의 세월>. 가슴을 치는 작품들이다.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우리에겐 ‘예은이 아빠’로 알려진 유경근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세상끝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게스트는 유족들이다. 1999년 씨랜드 수련원, 2003년 대구 지하철, 2014년 세월호… 수많은 참사들에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출연해 담담하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담담하기에 강렬한 울림이다. 아이를 잃는다는 것. 사실 가늠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여기서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다. 1987년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를 만나고, 1980년 광주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을 거쳐 전태일의 죽음까지 다다른다. “부모이기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위로하기 위한 그들의 사연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바람의 세월>은 지난 10년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다. 수많은 영상을 정성스레 구성하면서 뒤돌아본 ‘참사 이후’의 시간은 처참하다. 참사 당일 ‘전원 구조’라는 언론의 오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 대한 악마화, 단식 중인 그들을 조롱하는 폭식 투쟁,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상황들, 분향소 철거와 어이 없는 특검 결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아픔과 고통을 남긴 사건이었지만, 그 흔적을 지우려는 자들의 집요한 행동은 우리에게 큰 좌절이었다. 이처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우린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을 겪었고, 같은 일은 반복되고 있다. <바람의 세월>이 조준하는 과녁은 명확하다. 잊지 말자는 것. ‘국가 폭력과 참사’라는 부제를 붙여도 무방한 이 다큐멘터리는, 10년이라는 세월로 인해 행여나 망각될지도 모르는 세월호 참사를, 오히려 더 강렬하게 인식하고 따져 봐야 한다는 외침이다. 대한민국은 어쩌다가, 유족을 위로하고 온당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들을 경멸하고 비난하고 배척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10주기를 맞이해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이며,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안타까운 건 춘천의 극장가에선 접할 수가 없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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