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도심에 ‘친일파 흔적’이 떡하니⋯“사유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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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도심에 ‘친일파 흔적’이 떡하니⋯“사유물이라”

    친일파 구조물 춘천 곳곳서 발견
    시, 연구 결과에도 별다른 조치 없어
    "친일파, 안내판에 공개해야" 지적
    시, "필요성 인정하지만 조치 어려워"

    • 입력 2023.08.22 00:01
    • 수정 2023.08.26 00:02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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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와 관련된 구조물이 춘천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지만, 이를 알리는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역사연구회)가 2021년 실시한 ‘역사 바로 세우기 연구 용역’에 따르면 일제 제국주의 찬양 시설, 친일인사 기념물 등 이른바 ‘친일 잔재’가 춘천에서 6점이 발견됐다. 가옥이나 비석 등 친일 잔재로 파악된 구조물은 교동, 후평동, 소양동, 청평산, 봉의산 등 도심 곳곳에 세워져 있다.

    당시 이 용역은 춘천시가 친일 잔재 문화를 전수조사해 실태를 파악하고, 기록 관리, 청산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했다. 친일 잔재에 대한 체계적 조사로 청산의 근거를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5개월간 실시된 용역에는 총 1580만원이 들었다.

    본지가 직접 6개 구조물이 위치한 곳을 찾아가봤더니 용역을 끝낸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들의 공적을 적은 안내판만 그대로 설치돼 있을 뿐 이들이 친일 행각을 저질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단지, 시 홈페이지에만 용역 결과물을 게재했을 뿐이다.

    춘천 향교에 위치한 장헌근 모성비의 경우 ‘향교 발전에 공헌한 장헌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동면의 민성기 가옥은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인 민영휘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묘막’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친일 관련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 모두 일제 강점기 당시 귀족 작위를 받거나 관료를 지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21일 오후 춘천 향교의 '장헌근 모성비'. (사진=최민준 기자)
    21일 오후 춘천 향교의 '장헌근 모성비'. (사진=최민준 기자)

     

    하루 한 번꼴로 향교 앞을 지난다는 대학생 신모씨는 “이곳에 친일파와 관련된 유적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안내판만 보고 위인들의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럴거면 왜 돈까지 들여서 용역을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후평동 이규완 가옥, 소양강 처녀 노래비(반야월 작사) 등 곳곳에서 친일파와 관련된 흔적이 발견됐지만, 마찬가지로 그 행적이 따로 기재되진 않은 상태다. 시 홈페이지 문화유적 소개에서도 친일과 관련된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취재 과정에서 친일파 단죄문 하나가 발견되기도 했으나, 설치는 2013년 당시 광복회 강원도지부가 했다. 심지어 시는 단죄문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1일 춘천 동면 민성기 가옥.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인 민영휘의 묘를 관리하기 위한 묘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21일 춘천 동면 민성기 가옥.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인 민영휘의 묘를 관리하기 위한 묘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오동철 역사연구회 사무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춘천시가 먼저 용역을 맡겨 역사의식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였으나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어 안내판에는 친일파의 업적만 적혀 있는 상태”라며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어 철거는 못하더라도 구조물 안내판에 관련 인물의 친일 행적을 알려 후대에 교육용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친일파와 관련된 구조물마다 단죄문을 설치한 다른 지자체들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광주광역시는 2015년 한 공원에서 친일파 비석이 발견된 이후 친일 유적 전수조사를 진행했고, 발견된 친일 잔재에 단죄문을 설치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관계자는 “시청과 시의회, 교육청 등이 함께 의견을 수립하고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용역 결과에서 나타난 친일 잔재들에 대한 조치는 대부분 마무리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3년 소양동에 설치된
    춘천 소양동에 설치된 '친일파 이범익 단죄문'. (사진=최민준 기자)

     

    춘천시는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친일 행적을 안내판에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춘천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친일 안내판을 설치하거나 현재 문구를 수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대부분 사유물이다 보니 함부로 단죄문 같은 걸 설치하기 어렵고 친일 흔적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정리가 필요해 현재로서 명확한 답이 어렵다”고 밝혔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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