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피플] 춘천 극단 ‘무소의 뿔’ , 난타 섰던 에든버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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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피플] 춘천 극단 ‘무소의 뿔’ , 난타 섰던 에든버러 간다

    춘천 극단 무소의 뿔,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 초청
    연극인 꿈의 무대 에든버러, 코로나 무산됐다 재초청
    국내외 인정받은 ‘하녀들’ 8월 2일부터 한달간 공연

    • 입력 2023.07.30 00:01
    • 수정 2023.09.07 11:31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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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같이 혼자서 가라.”

    최초의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소의 뿔처럼 30여년 동안 연극 외길을 걸어온 한 연출가가 세계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오른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극단 이름 역시 ‘무소의 뿔’인데 그의 인생과 닮았다. 본지는 출국을 앞둔 정은경 연출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 연출은 지난 27일 202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코리안시즌 초청공연을 위해 영국 출국길에 올랐다. 내달 2일부터 27일까지 24회에 걸친 공연을 위한 준비가 드디어 마무리됐다. 26일 마지막 연습을 마친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길이 없었다고 했다. 에든버러를 향한 준비가 고됐던 것도 있지만 척박한 지역에서 연극을 하던 30여년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가 기어이 혼자서 에든버러를 가는구나!” 임신한 채로 해외 공연을 나가고 출산하자마자 작업을 해야 했던 과거의 자신을, 그는 스스로 다독였다. “백조는 우아하기라도 하지,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힘들어야 돼?” “연극은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이 하나” 등 수없이 읊조렸던 푸념들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극단 무소의 뿔 대표로 연극 ‘하녀들’을 연출한 정은경 연출이 영국 출국을 앞두고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극단 무소의 뿔 대표로 연극 ‘하녀들’을 연출한 정은경 연출이 영국 출국을 앞두고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이번 공연은 3년만에 다시 성사됐다. 지난 2020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코로나19로 75년만에 처음으로 축제가 취소됐다. 이듬해 비대면 축제 참여 의사를 물었지만 작품 의도를 고스란히 전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에든버러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던 그는 지난해 말 뜻밖의 이메일을 받았다. 내년(2023년)에 축제를 정상 개최할 예정인데 무대에 설 의사가 있냐는 것. 정 연출은 앞뒤도 재지 않고 수락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로 하루 3000여개의 공연이 지역 곳곳에서 열린다. 연극계 올림픽으로 표현할 정도로 전 세계 내로라하는 연극 작품이 몰려온다. 무소의 뿔이 한달간 공연하는 극장은 가장 크고 명성이 높은 극장 중 하나인 어셈블리 극장이다. 작품을 까다롭게 선정하기로 유명한 극장이라 이곳 공연은 세계시장에서의 유통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으로도 평가한다. 1999년 ‘난타’가 이곳 초연되며 화제를 모았다.

    올해 공연은 코로나19 이후 열리는 첫 대면 축제로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걱정도 많다. 코로나로 온라인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얼마나 많이 축제를 찾겠냐는 것이다. 

    정 연출은 “기존에 해외에서 공연할 때와 달리 궁금하고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은데 맨땅의 헤딩이라도 해보려 한다”며 “작품은 공연하는 사람들이 책임지는 것이니 공연에만 집중하면 됐는데 평론가, 리뷰어, 축제기획자 등을 어떻게 우리 극장으로 오게 할지가 가장 큰 과제”라고 했다.

    이어 “올림픽도 0.01초 차이로 금메달과 은메달이 결정되는 것처럼 생존 정글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며 “그 다음 세계무대로 갈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연을 했다는 ‘초청’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공연 기간 무대를 마치면 거리로 나가 홍보물을 돌리며 공연을 소개할 예정이다. 전문 리뷰어 등을 위한 굿즈 의상이나 홍보용 부채, 전단지 등도 제작해뒀다. 

     

    정은경 연출이 외국 관객들을 위한 홍보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정은경 연출이 외국 관객들을 위한 홍보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공연 작품인 ‘하녀들’은 정 연출이 30대 중반의 나이로 초연한 작품이다. 장쥬네의 동명 원작을 정 연출이 재구성했고 김정훈 제작감독이 드라마터그로 함께했다. 2007년 ‘하녀들’이 운명처럼 찾아왔던 이유는 극중 인물들이 자신과 너무 닮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별히 세계 무대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인 만큼 자신만의 연극적 해석이 세계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하녀들’에서는 등장인물 3명 가운데 마담을 제외한 2명의 하녀만이 등장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누구나 욕망이 있지만 욕망대로 살지 못한다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에서는 하녀 두 명의 대화만으로도 등장하지 않는 ‘마담’을 연상할 수 있는데 이 지점에서 “누구나 마음속에 마담(욕망)을 품고 산다”는 연출 의도가 강조된다. 

    무대에 등장하는 오브제도 의자와 가방 두어가지로 간결하게 구성했다. 구성이 간결하다는 것은 반대로 이를 표현하는 연극성이 더 극대화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작품은 절제된 호흡으로 작품을 이어가다 절정의 순간 에너지를 터뜨리며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정 연출은 “외국 배우들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한국적인 호흡이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이 국내외 평단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무대’라고 찬사를 받았던 이유다. 작품은 체코 어퍼스트로피 국제연극제에서 최우수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에딘버러로 향하는 스태프는 배우와 음향 오퍼레이터 등 6명으로 단촐하다. 세계 무대에 선다는 성과에 들뜰 수도 있지만 정 연출은 이들에게 진중해질 것을 거듭 부탁했다. 그는 “무대는 벌거벗은 것처럼 모든 것이 보여지는 공간이라 교만하거나 들뜬 부분들은 고스란히 무대에 드러난다”며 “오직 무대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스태프들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코리안시즌 초청공연 ‘하녀들’ 홍보 포스터. (사진=극단 무소의 뿔)
    202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의 코리안시즌 초청공연 ‘하녀들’ 홍보 포스터. (사진=극단 무소의 뿔)

     

    이번 공연은 그의 연극 인생의 원동력이 돼준 영국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20대 젊은 나이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친구 따라 놀러간 춘천 극단 연극사회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 춘천국제연극제에서 리투아니아 공연을 보면서 세계에 다양한 연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영국에서 연극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타국생활 적응에 힘이 됐던 피터 스미스 씨의 도움으로 축제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정 연출은 “밤 12시까지 공연이 벌어지는 현장이 아직도 생생한데 직접 무대를 하러 간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돌아가신 피터 스미스의 자리를 마음 속에 마련해두고 헌정하는 무대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꿈의 무대에 오르면 목표를 달성한 기분이 들지 않냐는 질문에 정 연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답했다. 연극을 시작했던 곳에서 그는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꿈의 무대에 오르는 소감을 묻는 말에 정 연출은 말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다 지우고 나니 결국 ‘공연을 한다’라는 딱 한 줄만 마음에 남았어요. 빨리 관객을 만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습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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