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도약계좌라는 이름의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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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도약계좌라는 이름의 희망고문

    [기자수첩] 최민준 경제팀 기자

    • 입력 2023.06.14 00:00
    • 수정 2023.06.15 08:07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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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준 경제팀 기자
    최민준 경제팀 기자

    청년도약계좌에 대해 취재하던 중 지난해 청년희망적금에 가입했던 지인이 떠올랐다. 1년 넘게 저축했으니 1000만원 가까이 모았을 것이란 생각에 안부를 묻자 “진작에 그만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목돈 한번 모아보자며 당차게 적금에 가입했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큰 부담이었고 결국 반년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희망이 아닌 절망을 줬다며 ‘청년절망적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일부에서만 그친 현상이 아니다. 연 10% 금리를 준다는 소식에 286만명이 청년희망적금에 가입했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적금을 해지한 이들이 45만명에 달한다. 2년이라는 만기와 월 50만원이라는 저축액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청년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은 2년이란 시간 동안 꾸준히 저축할 돈도 시간도 없었다.

    청년도약계좌를 마주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저축은 더 힘들어졌다. 5000만원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지만 만기까지 5년을 버텨야 하고 매달 내야 하는 돈은 70만원에 달한다. 45만명의 청년들이 1년도 안 돼 적금 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봤음에도 먼 미래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허망한 꿈만 불어넣고 있다.

    정말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청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집 안에 여유가 있는 일명 ‘금수저’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청년도약계좌의 신청 조건은 개인 소득 6000만원 이하, 가구 소득 중위 180% 이하다. 그러나 주민등록상 세대가 분리된 부모의 소득은 합산해 적용하지 않는다. 돈 많은 부모에게 매달 70만원을 받아 저축해도 서류 속 세대만 분리돼 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저소득 청년들이 아니라 금수저 청년들을 위한 제도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적금에 가입해도 중도 해지하면 정부 지원금은 물론 비과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정부에선 이를 막기 위해 청년들에게 도약계좌를 담보로 한 대출과 전용 마이너스 통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적금에 들었는데 이를 유지하려면 빚을 져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부유한 이들에겐 목돈을 늘릴 더없이 좋은 기회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칫하면 빚만 떠안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는 “어려운 경제 환경의 청년들에게 사회 출발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빚을 짊어진 상태로 정상적인 출발이 가능할까.

    정부와 청년 사이에서 적금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들은 우대금리를 이용한 금리 부풀리기에 한창이다. 청년 금융 지원을 명분 삼아 본인들의 이익을 위한 장사에 나섰다. 적금금리 6%를 보장받아 5년 만기를 채우면 5000만원을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청년들은 우대조건을 맞춰야 하는 또 하나의 고비에 마주했다. 은행권은 카드 실적 등의 우대조건에 따라 2% 안팎의 우대금리를 적용할 방침이다. 기본금리는 연 4%에 불과하다.

    정부는 청년들의 자산 형성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청년도약계좌를 출시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국과 금융권이 진정으로 경제 사정이 어려운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은 것인지 의문이다. 청년도약계좌는 열심히 일하는 청년의 도약을 돕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을 테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은 오히려 열심히 일해도 나는 안 되나 보다라는 절망감만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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