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이 시대 유행 ‘갭투자’의 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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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이 시대 유행 ‘갭투자’의 역풍  

    • 입력 2023.06.05 00:00
    • 수정 2023.06.05 08:19
    • 기자명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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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최근 10년간 주택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트렌드는 바로 갭투자다. 갭투자는 세입자로부터 돈을 빌려 우상향 기우제를 지내는 레버리지 투자다. 과거에도 전세 끼고 집을 사는 일은 있었다. 주로 돈이 모자라 일단 전세를 끼고 사서 나중에 입주하거나 아니면 여유층이 살던 집 외에 전세 끼고 한 채 더 사는 정도였다. 산발적이고 어찌 보면 ‘소박한’ 갭투자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무주택자까지 뛰어들면서 갭투자는 시대의 유행 투자 패턴이 되었다. 투기나 사기에 가까운 기업형 갭투자도 극성을 부렸다. 보증금만으로 집을 사들이는 ‘무피(제로 프리미엄) 갭투자’,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높아 오히려 돈을 받고 사는 ‘플피(플러스 프리미엄) 갭투자’까지 인기를 끌었다.

    갭투자는 호황기에는 가격을 부풀리고 침체기에는 낙폭을 키운다. 기준금리는 미국이 더 올랐는데 집값은 되레 한국이 더 떨어진 것은 갭투자의 유행과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지렛대로 삼아 투자하는 갭투자는 변동성을 더 키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전세보증금을 합친 가계대출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에 달할 정도로 높은데다 변동금리 대출이 많아 금리 인상에 취약한 점도 급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갭투자의 위험성이 커진 것은 2020년 7월 말 시행된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 조항이다. 묵시적 갱신에만 적용되던 계약 중도 해지 권한이 계약갱신 세입자까지 확대된 것이다. 세입자가 해지를 통보하면 3개월 뒤 효력이 발생한다. 결국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가 중도 해지를 요청하면 집주인은 3개월 뒤 보증금을 갚아야 한다. 자신이 모아둔 목돈을 동원하든, 새 세입자를 구하든 말이다. 세입자가 그만 살고 나가겠다는 통보는 집주인에게는 3개월 안에 빚을 갚으라는 어음 독촉장 같은 것이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에게 차입금, 즉 부채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채무상환 요구를 이행하기가 여의치 않다. 집주인은 이제 초조해진다. 빚을 상환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세입자가 강제경매에 나설 수 있어서다. 집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세입자가 있으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은행에서 선순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 마련이 쉽지 않은 집주인은 고육지책을 동원한다. 시세보다 더 싸게 전세를 내놓거나 아예 급매로 팔아버리려는 것이다. 급전세와 급매물이 동시에 나오는 구조다. 갭투자는 전세와 매매 모두 가격 하락을 부르는 뇌관이 되는 셈이다. 계약갱신청구권 조항을 수정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갭투자에 따른 시장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갭투자는 위기에 취약한 고위험 투자 방식이다. 남의 돈을 끌어다가 투자하는 갭투자가 위기에 얼마나 위험한지 경각심을 가지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바람 부는 날 계곡에서 외줄 타기처럼 조마조마한 것이다. 더욱이 갭투자는 자신이 불행해지면 세입자도 불행해진다. 갭투자는 이익의 경우 집주인이 독차지하지만, 손실은 임차인과 분담하는 방식의 투자다. 세입자는 위기에는 집주인과 강요된 공동운명체가 된다.

    한때 갭투자의 성지가 급락의 진원지가 되었다. 갭투자가 몰린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내림세가 극심했다는 것이다. 요즘 갭투자자의 손절매 매물을 또 다른 갭투자자가 사들이는 모습도 나타난다. ‘갭투자자 헌터’라고나 할까?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갭투자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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