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면 운전해야”⋯답 없는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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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살려면 운전해야”⋯답 없는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교통사고 줄이고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사업 시행
    강원 지난해 65세 이상 100명 중 2명만이 반납
    “나이 들면 할 수 있는 것 운전과 경비밖에 없어”
    개선 없자 정부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검토 밝혀

    • 입력 2022.10.13 00:00
    • 수정 2022.10.14 00:03
    • 기자명 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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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매년 증가하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사업을 시행했지만, 생계를 위한 이유로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다. (그래픽=연합뉴스)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매년 증가하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사업을 시행했지만, 생계를 위한 이유로 참여가 저조한 상황이다. (그래픽=연합뉴스)

    #. 10년 전에 퇴직한 춘천시민 A씨(73)는 월 69만원의 노령연금만으로는 노후 생계유지가 어려워 지난해부터 동료 1명과 함께 용달이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과거에 화물트럭을 몰기도 했고, 동료보다 나이가 많아 운전을 담당하고 있다. A씨는 지자체가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반납을 권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면허를 반납할 생각이 없다. 그는 “아직 운전하는데 문제가 없는데 생계가 달린 일을 그만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전국적으로 ‘고령운전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강원도의 반납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음에도 운전을 못하게 되면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노인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나이가 아니라 실제 운전 능력을 바탕으로 고령자의 운전 면허 유지 여부를 정하는 조건부 운전면허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민 국민의힘 국회의원 자료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지난해 만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15만259명 중 3210명(2.1%)만이 운전면허를 반납했다. 반납률이 2019년 1.1%에서 2020년 2.5%로 한 때 늘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인한 관련 홍보 미흡 등으로 지난해 0.4%p 감소했다.

    고령자들의 운전면허 반납률이 낮은 것은 일하는 노인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3년 주기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36.9%는 현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25.7%는 경비 관련 일을 하고 있었으며, 20.6%는 농림어업, 18.7%는 운송업에 종사 중이었다. 또한 통계청이 ‘2022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령층 10명 중 7명은 향후 일하기를 원했고, 이 가운데 절반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취업을 희망했다.
     

    화물차를 운전하다 10년 전 은퇴한 A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지난해부터 용달이사 일을 시작해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사진=서충식 기자)
    화물차를 운전하다 10년 전 은퇴한 A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지난해부터 용달이사 일을 시작해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사진=서충식 기자)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면서 전체 교통사고 중 가해자가 고령인 비율은 20% 선까지 올랐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에서 6605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이 중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는 1911건(19.1%)에 달한다. 이외에도 2020년 1322건, 2019년 1260건, 2018년 1201건, 2017년 1152건 등 매년 1000건이 넘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령 운전자 중 운전이 어려운 이들에게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반납이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구나 자진 반납 실적 대부분은 면허는 있어도 실질적으로 운전을 하지 않는 이른바 ‘장롱면허‘인 것으로 추정된다. 춘천을 비롯해 도내 17개 시·군은 조례를 제정해 65세 이상 운전면허 자진 반납자에게 교통비 및 지역상품권 등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A씨는 “노후 자금을 두둑하게 모은 사람이 아니라면 노령연금만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며 “70살이 넘어가면 할 수 있는 일이 경비 아니면 운전밖에 없는데,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 아직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동료 B(61)씨는 “노후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은 나도 형님(A씨)처럼 70살이 넘어도 계속해서 일하고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경우 운전 능력을 검증 받아야 운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도로교통공단은 2019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갱신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이 때 인지능력 자가 진단이 포함된 2시간의 교통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운전면허를 반납하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노인일자리를 늘리거나 맞춤형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실효성 높은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했다.

    [서충식 기자 seo90@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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