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들로 짓는 정체성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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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조각들로 짓는 정체성의 집

    송신규 개인전 ’오랫동안 잊혀진‘ 춘천서 열려
    자연, 동물 등 유년 보낸 덕두원리 경험 그려내
    중첩된 기억 파편·왜곡된 시간 실크천에 형상화

    • 입력 2022.10.12 00:00
    • 수정 2022.10.13 05:14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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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여 년만에 고향에 다시 돌아온 작가는 어떤 기억을 떠올렸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전시가 춘천에서 열리고 있다. ‘오랫동안 잊혀진’을 타이틀로 한 전시회에서는 송신규 작가가 고향을 떠올리며 작업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송신규 작가의 개인전 '오랫동안 잊혀진'이 오는 16일까지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한승미 기자)
    송신규 작가의 개인전 '오랫동안 잊혀진'이 오는 16일까지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에서 태어난 송 작가는 대학에 입학하며 지역을 떠났다. 이후 대만과 양구, 원주 등지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활동하다 올해 춘천예술촌 입주를 계기로 귀향했다. 

    그동안 자연과 생태계, 상실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온 송 작가는 춘천에 돌아오면서 유년의 기억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유년시절 덕두원리에서 보았던 자연과 동물 그리고 주거지에서 경험했던 상실감 등을 미시적 관점으로 그려냈다. 

     

    송신규 작 ‘자연의 피부’ (사진=한승미 기자)

    전시장 안쪽에 있는 ‘자연의 피부’는 2년 전 전남 순천 등에서 작업한 작품이다.

    그는 땅, 돌, 나무, 조개껍데기 등 변형되지 않은 자연과 그 부산물에 집중했다. 변형되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프로타주(피사물에 종이를 대고 문질러 그 무늬를 베끼는 기법)로 표현했다. 이렇게 자연의 표면을 긁어내는 행위를 통해 얻은 질감들은 왜곡되지 않은 시간을 의미한다. 

     

    송신규 작 ‘회전문’ (사진=한승미 기자)

    하지만 ‘회전문’ 작품을 통해 자연과 풍경은 변형되고 이를 담은 기억들도 파편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중첩된 기억의 조각들과 왜곡된 시간을 반투명 소재의 실크천에 형상화했다. 천에 빠르게 스며들면서 예측 불가능한 모습으로 변하는 먹을 활용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기도 했다.

    작품은 이동 가능한 행거나 파라솔을 변형해 만든 구조물에 설치됐다. 구조물에 걸린 작품들은 펼쳐진 책의 페이지처럼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미생물의 잔해’와 ‘조약돌’ (사진=개나리미술관)
    미술관 외부에서 ‘미생물의 잔해’와 ‘조약돌’을 볼 수 있다. (사진=개나리미술관)

    전시장 바깥에서는 유리에 시트지로 붙인 ‘미생물의 잔해’와 옻칠한 나무 작품 ‘조약돌’을 볼 수 있다.

    ‘회전문’이 작가 기억의 단편을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이 작품들은 작가의 삶을 투영한 듯하다. 작가는 유리에 붙는 시트지의 성질이 부유하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자신을 닮았다고 느꼈다. 또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진액을 내뿜으며 다시 치유하는 옻나무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송신규 작가는 “어린 시절에 봤던 자연의 꿈틀거리는 생명의 요소들이 가장 사라지지 않는 ‘고유의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염되지 않은 나를 찾기 위한 의미에서 작업한 ‘정체성 찾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6일까지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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