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근참(覲參)⋯ ‘연해주(沿海州)의 꿈,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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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의 예감] 근참(覲參)⋯ ‘연해주(沿海州)의 꿈, 독립’

    • 입력 2022.10.07 00:00
    • 수정 2022.10.08 00:06
    • 기자명 용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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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의암류인석기념관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의 문이 열리자 ‘⋯ 탄생 180주년 기념 공연’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발길을 안내했다. 그날(10월 1일)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암밤비 지역의 재구(梓溝, 자피거우) 마을이었다. 때는 1910년 7월 27일. “오늘 이곳을 찾아주신 모든 분은 일제와 그들의 앞잡이 친일파를 몰아낼 독립지사입니다.” 훤칠해서 더 꼿꼿하게 시선에 든 여성 사회자의 결연한 칭송에 관객들은 옷매무새부터 거듭 추슬러야 했다. 

    내리쬐는 햇살을 가르며 사방에서 속속 무대로 모여든 이들은 이날의 공연진, 그들이 앞세운 깃발에는 쟁쟁한 이름이 적혀 있다. “연해주를 근거지로 전국, 세계 각 곳에서 의병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간도관리사로 알려진 동의회(同義會) 이범윤 최재형 안중근 선생께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 애국계몽 계열, 만주 민족주의자 안창호 이동휘 이갑 선생께서 등장하십니다. ⋯ 헤이그 특사로 활약하신 이상설 이위종 선생께서 등장하십니다. ⋯ 의병 계열의 류인석 선생께서 등장하십니다. 의암(毅菴) 류인석 선생은 춘천시 남면 가정리에서 출생하신 후 한말 을미의병장으로 활약하셨고, 국외 무장 투쟁의 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입장해주십시오!”

    국내외 의병 총집결체, 13도의군(十三道義軍)을 결성하기 위해 모인 구국 지사들이다. 역사는 이 자리에서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된 의암 선생이 포고문 ‘통고13도대소동포(通告十三道大小同胞)’를 반포,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항일 구국 전쟁을 벌이자고 호소했다고 전하고 있다. 위패로 모신 의열사(묘역 경내)의 의암 선생 전신 영정이 그렇다. 한 손은 포고문 두루마리를, 또 다른 한 손은 장도(長刀)가 든 긴 칼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여기에서 연유한다.

    ‘연해주의 꿈, 독립’은 4개의 주제로 펼쳐졌다. 길놀이 퍼포먼스인 1주제 ‘연해주에 모이다’로 고고성을 울리고, 2주제 ‘13도 의군을 결성하다’를 창작 판소리로, 3주제인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은 사물놀이로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그리고 마지막 4주제 ‘연해주에서 상해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축하하는 무대다.

    춘천에서 활동하는 이은근 프로젝트의 공연, 여성 록 가수의 강렬한 목청과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기백은 객석을 전율케 한다. ‘아리랑’에 이어 대미를 장식한 ‘애국가’ 열창은 가히 압권이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절에 가사를 올린 ‘독립군 애국가’다. 주저앉을 듯 한껏 쪼그린 자세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은 김구 선생이 의암 선생의 묘에 엎드려 고유문(告由文)을 읊조리던 진경을 연상케 했다. 갈구였다. “대한민국 28년(1946년) 8월 17일, 김구는 삼가 류인석 선생 영령께 고하나이다. 유학(儒學)이 쇠퇴한 지 오래라, 공부하는 이들이 자구(字句)에 얽매여 실제 활용을 생각하지 아니하여, ⋯ 한 줄기 향으로 무한한 심사를 삼가 아뢰니 영령은 앞길을 가르쳐 주소서.” 

    ‘연해주의 꿈,⋯’은 책으로만 접했던 의암 선생의 진면목을 체감케 했다. 그랬기에 생애와 항일 독립운동에 함께 투신했던 애국지사들의 활약을 조명함에 주효했다. 진귀한 옛 사진을 편집한 디지털 영상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해설은 잠재한 감각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길놀이 퍼포먼스와 창작 판소리, 사물놀이와 록음악으로 편성한 구성도 그랬다. 오늘날의 감성으로 엄숙한 역사적 발자취를 인식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초연(初演)이었기에 가다듬고 숙성시켜야 할 숙제는 제작진과 공연자들이 먼저 알아챘을 것이다. 객석에 “될 성싶은 작품이 탄생했네”라는 찬사가 넘실댔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다시 볼 수 있느냐’다. 춘천시와 춘천문화원 관계자, 제작진 공히 “계획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 없어 하는 표정에 뮤지컬 작품 ‘명성황후’ ‘안중근’ 등이 대비됐다. 2000년대 초, 강원도가 ‘강원의 얼 선양 사업’으로 의암 묘역에 기념관 등을 건립하며 성역으로 조성할 당시 제시한 취지는 숙연케 했다. ‘강릉은 오죽헌, 춘천은 의암묘역’이라고 했다. “율곡에서 태동한 조선 성리학 기호학파의 결기가 의암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학계의 논거를 들었다. 의암 선생을 ‘한국의 마지막 선비’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그런 점에서다. 

    시류가 그렇듯 인물이든 명소이건 새로운 콘텐츠 확보가 관건이다. ‘연해주의 꿈,⋯’은 제작 기간 6개월 남짓에 출연자 50여명, 총제작비 1500여만원이었다고 한다. 흔히 하는 말로 가성비 높은 수작품이다. 숙명처럼 탄생한 작품이 사장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텐가? 번듯하게 조성해 놓은 춘천시청 광장에서의 활개를 고대한다. 공연자에 앞서 시민을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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