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집착을 끊어주는 말 '까짓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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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집착을 끊어주는 말 '까짓것'

    • 입력 2022.04.18 00:00
    • 수정 2022.04.18 08:19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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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말은 힘이 셉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그렇습니다. 요즘 정치판에서 오가는 막말처럼 다른 사람을 성나게 할 수도 있는가 하면, 힘과 위로를 줄 수도 있는 것이 말입니다.

    여기 우리가 무심코, 흔히 쓰는 말에서 간절함과 위로를 담은 말을 길어내 조근조근 풀어낸 글을 모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 소망』(조현용 지음, 마리북스)입니다. 지은이는 경희대학교 한국어교육 전공교수입니다. 우리말 전문가답게 한마디, 한마디를 화두로 삼아 우리네 삶을 돌아보고 삶의 지혜를 궁리하는데,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위안을 얻거나 성찰을 하는 데 꽤 쓸모 있는 책입니다.

    ‘까짓것’이란 글을 볼까요. 지은이는 이 말이 집착을 끊는 말이라고 일깨웁니다. ‘그 정도까지는 뭐!’란 뜻이 담겼다나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렇게 못 했을까’ 등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안타까운 일, 후회스럽거나 괴로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럴 경우 무시하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죠. 집착이죠. 때로는 고집, 애착의 얼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괴로운 일 자체보다 신경을 쓰는 게 더 힘듭니다. 지은이는 ‘까짓것’을 해결책으로 권합니다. 나를 다시 세워주고, 부정의 생각을 없애 주는 주문이라면서요. 설득 과정이 우리말 전문가답습니다. 대사(大事)에서 변한 ‘대수롭다’가 ‘어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며 ‘까짓것’에는 ‘그 까짓것이 대수야?’란 뜻이 함축되어 있으며 이건 ‘그게 큰일이야?’라는 의미라고 풀어갑니다.

    종교나 철학 등 어렵고 깊은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도, 우리가 쓰는 일상어에서 이런 속 깊은 지혜를 일궈 내는 것을 보면 ‘일상의 철학자’라 할 만합니다.

    ‘억울’이란 글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함. 또는 그런 심정’이란 낱말 풀이를 들려주며 ‘억울’이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라 짚습니다. 공감이 가겠지요. 살다 보면 누구나 겪어본 심정일 테니까요. 개인 간의 관계뿐 아니라 요즘엔 불공정, 불공평 등 세상이 나를 억누르는 답답함도 수두룩하잖습니까.

    지은이는 이번에 글자로 풀어갑니다. 억울에 쓰인 ‘울(鬱)’ 자가 정말 빽빽해서 답답한 느낌이 드는 글자임을 우선 지적합니다. 제가 찾아보니 이 글자는 정말 숲이 우거져 막힌 모양을 그린 글자더군요. 아무튼 지은이는 억울함은 꽉 차 있기 때문에 느끼는 답답함인 만큼 자신을 쥐어짤 게 아니라 마음에 공간을 만들라고 권합니다. ‘왜 나만?’ 대신 ‘세상이 다 그렇지 뭐. 내 잘못이 아니라 세상 잘못이야’라 여기는 순간 마음의 공간, 즉 여유가 생겨 억울함이 작게 느껴질 거랍니다.

    아, 물론 이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답은 알지만 풀이 과정을 몰라 답답해하듯 스스로 한심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은이는 스스로 한심하다고 여기는 것이 풀이 과정의 시작이라고 조언합니다. 조금 위로가 되려나요?

    ‘평가’란 글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뾰족한 칼날을 거두고 함께 느끼기를’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평가(評價)란 글자에 ‘평평할 평(平)’이 들어가 있는 것은 공평하게 하라는 뜻이라거나 평가는 상대가 받고 싶어 할 때 해야 한다는 대목이 그랬습니다. 지은이는 여기 더해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인색한 사람은 그 사람의 모습에서 자신의 싫어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며 서로의 긍정적 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따뜻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일러줍니다.

    말을 다룬 글이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도 만납니다. 중세 국어에선 ‘어른’을 ‘얼운 사람’이라 표기했는데 ‘얼우다’라는 말은 ‘교배하다’ ‘교합하다’란 뜻으로 ‘어른’은 결혼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네요. 또 함경도 지방에선 어른을 ‘자란이’라 한답니다. 그러면서 자란이는 성장이 끝난 사람이 아니라 계속 자라는 사람이며, 단순히 나이 먹고 몸만 커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릇’이 커지는 사람이라 풀어줍니다. 뭐, 어른을 부정적으로 이르는 ‘꼰대’라는 말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거라면서요.

    이 책은 ‘우리말 선물’ ‘우리말 지혜’ 등 ‘우리말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망설임’ ‘악연’ ‘일부러’ ‘어떻게 해’ 등 말에 얽힌 이 책의 사유를 음미하고 나니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어집니다. 저만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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