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풀과 나무와 함께 자란 소년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순원의 마음풍경] 풀과 나무와 함께 자란 소년

    • 입력 2022.04.17 00:00
    • 수정 2022.04.17 14:31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춘천은 남쪽보다 확실히 봄이 늦는 것 같습니다. 피부로도 절실히 느끼고 꽃으로도 절실히 느낍니다. 김유정문학촌 안에 몇 그루의 매화나무가 서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꽃소식이 한창이어도 김유정문학촌의 매화는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듯 삼월이 가고 사월이 돼야 비로소 동글동글하게 꽃망울 모양을 갖춥니다.

    봄이면 꽃나무들의 꽃이 피는 순서가 대략 정해져 있습니다. 물가의 버드나무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잎을 냅니다. 자기가 서 있는 시냇가의 얼음장 밑으로 물소리만 들려도 봄이 온 줄 알고 성급하게 버들강아지를 피웁니다. 그 다음이 매화인데 겨울과 봄 사이에 설중매라는 이름으로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웁니다. 계절과 꽃이 피는 순서가 분명한 남쪽에서는 산수유보다 매화가 확실히 일찍 핍니다. 

    그런데 봄이 늦게 오는 춘천에서는 매화가 산수유보다 빠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 삼월 하순이 돼야 거의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트립니다. 다른 곳보다 늦게 오는 봄이 모든 꽃나무를 묶어 두었다가 댐의 물을 일시에 방류하듯 한꺼번에 꽃을 피우게 합니다. 그래서 매화가 벚꽃과 함께 피어나기도 합니다.

    김유정문학촌에 있다 보면 많은 사람이 꽃에 대해 물어 옵니다. 집에서 가꾸는 나무가 아니라 산에서 저 혼자 자라는 나무 가운데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게 생강나무인 것 같습니다. 김유정문학촌의 상징과도 같은 동백꽃(생강나무꽃)이 피어나면 많은 사람이 노란 동백꽃과 노란 산수유꽃의 차이와 구별법에 대해서 묻습니다.

    비슷한 듯 보여도 꽃잎의 생김이 어떻고, 같은 노란색이어도 꽃의 색깔이 어떻고,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듣고도 구분을 못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동백꽃은 꽃자루가 짧아 나뭇가지에 노란 물감을 짜놓은 듯 몽글몽글한 모습으로 피어나고, 산수유는 동백꽃보다는 꽃자루가 길어 나뭇가지에 카스텔라 조각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핀다고 말합니다. 민가에 있는 노란 나무들은 다 산수유나무입니다.

    춘천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피는 매화와 벚꽃의 구분도 그렇습니다. 초보자들에게 꽃 모양과 꽃 색깔로 설명하는 것은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잘 봐. 시장에서 체리를 살 때 열매 끝에 자루가 길게 붙어 있지? 체리가 바로 서양 벚나무 열매야. 꽃이 나중에 열매가 되는 거니까 열매만 자루가 긴 게 아니라 꽃도 자루가 길겠지. 그런데 매실은 나중에 열매를 수확할 때 나뭇가지에 짝 달라붙어 있는 걸 훑듯이 따지. 그러면 꽃도 꽃자루가 거의 없는 것처럼 가지에 짝 달라붙어 피겠지.”

    같은 동백나무여도 어떤 나무는 가을에 열매가 많이 달리고, 어떤 나무는 적게 달립니다. 동백꽃도 꽃마다 열매가 다 열리는 게 아니라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춘천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개나리도 호박꽃처럼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어릴 때 대관령 산촌에서 풀과 나무와 함께 자라면서 배웠습니다.

    며칠 전 어떤 분이 온갖 나무의 꽃이 피는 봄날에 공원 산책을 나갔다가 찍은 사진 한 장을 단톡방에 올려놓았습니다. 지난해에 열렸던 모과가 나무에 매달린 채 갈색으로 과일 미라처럼 바짝 말라버린 모습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다들 무슨 열매일까 궁금했지요. 저는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그것이 모과라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지금 김유정문학촌 제 책상 위에 그런 모습을 한 모과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김유정문학촌에서 딴 모과인데, 겨우내 썩지 않고 갈색으로 바짝 말라버린 것입니다. 어릴 때에도 봄이면 마른 모과를 자주 보았습니다.

    지금 김유정문학촌은 꽃 대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꽃 대궐입니다. 그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고야’라고 부르는 재래종 자두꽃입니다. 요즘 개량종으로 나온 과수원의 자두는 열매가 아이들 주먹만큼 큽니다. 그러나 방울토마토 작은 것보다 더 작은 재래종 고야는 꽃도 조팝꽃만큼이나 작게 핍니다. 그 작은 꽃이 무리를 지어 구름 같습니다. 문학촌 마을에 이 나무들이 아주 많습니다. 물론 상품적 가치는 없지만 제게는 어떤 꽃나무보다 반갑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향의 봄’ 노래를 저절로 부르게 합니다. 다들 주말에 이곳으로 봄나들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