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어떤 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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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어떤 면접

    • 입력 2022.04.13 00:00
    • 수정 2022.04.13 15:15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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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면접

                                                       심재휘

    두 명의 입학 사정관 앞에 혼자 앉은 그는
    문경에서 어제 저녁차로 올라왔다 한다
    서울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월의 낯선 밤을 새우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왔다 한다
    눈빛이 말처럼 더듬거리는 고3 졸업반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 요양원들을 다니면서
    집 나간 아버지를 찾겠단다
    터미널 긴 의자에 앉아 면접을 준비하던 지난 밤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와 가족증명서를 읽으며
    어릴 때 헤어진 엄마가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열아홉이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한다
    국영수보다 어려운 가족이라는 과목의 등급은 
    생활기록부에도 없어서
    가늘게 떠는 목소리에 몇 점을 주어야 하나
    일찍이 그의 전 재산이 되어버린 난감의 표정은 
    가필할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는 개근의 무늬
    동공에 길게 고여 있는 자기소개서의 필체
    뜯어진 바지 밑단 아래 드러난 그의 맨발목이 
    젖은 걸음으로 또박또박 써야 했던 지원 동기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필생의 학업 계획인데
    푸르스름한 전등 불빛 아래 질문도 대답도 머뭇거린다

    *심재휘: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외. 현재 대진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이 시의 대상이 된 학생의 사정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면접관이었던 교수도 아마 마음이 아파서 이 시를 썼나 봅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안타까운 사연으로 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어릴 때 헤어진 엄마가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을/열아홉이 되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마저도 집을 나가 어딘가 요양원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학생은 면접관 앞에서 말합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 요양원들을 다니면서/집 나간 아버지를 찾겠다”고 말입니다. 부모들의 잘못으로 이렇게 그늘진 곳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가를 우리 어른들은 반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학생은 “문경에서 저녁차로 올라와/서울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동서울터미널에서 시월의 낯선 밤을 새웠다”고 진술합니다. 더구나 “뜯어진 바지 밑단 아래 드러난 그의 맨발목”은 가슴 서늘하도록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터미널 긴 의자에 앉아 면접을 준비하던 지난 밤/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와 가족증명서를 읽으며” “국영수보다 어려운 가족이라는 과목” 앞에서 “가늘게 떠는 목소리에 몇 점을 주어야 하나”라고 면접관도 그 학생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혼란스러워졌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국영수는 파고들면 정답이 있지만 ‘가족이란 과목’은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이 있다면 오직 ‘핏줄’이란 등식인데 이 핏줄에 얽힌 등식에는 인간의 오만 가지 ‘생각’이란 함수와 ‘감정’이란 함수가 있어서 국영수처럼 쉽게 풀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새 입학 시즌도 가고 4월도 중반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많은 학생이 원하는 대로 진학하지 못한 채 아직까지 방황하는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불우한 환경 속에서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의 주인공처럼 지향하고자 하는 굳은 신념, 그런 신념으로 오로지 자신을 이겨낸다면 반드시 소원은 이뤄질 것입니다. 이 학생은 분명 면접시험을 잘 통과하여 원하는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굳은 신념은 곧 금과옥조와도 같은 이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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